[시(詩)가 말을 걸다] 당신의 선택, 나의 믿음.
파적(破寂) 作 : 김연동
밤새워 솔숲에서 소쩍소쩍 울음 울어
개오동 잎사귀에 어둠을 지울 때쯤
숨어서 숨어서 피는 진창의 저 민들레 |
가끔은 나 감히 당신께 여쭙고 싶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어째서 힘든 길을 거듭해 걸으시나요?'
그렇게 목울대까지 치받치는 물음을 삼키지 못해 울컥하다가,
당신이 아닌 내가, 나의 삶도 어쩌지 못하는 내가,
지난날의 당신이 내린 용단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오신 당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열심히, 성실하게 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까닭으로,
나는 당신의 고된 걸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당신께서 이루어 놓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얻고자 그토록 애쓰신 것은,
지난날 당신의 서러운 결핍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요.
그 순간 당신이 내린 결정 또한, 당신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테지요.
차라리 젊은 날의 당신이 그러했듯 더 없이 자유롭게,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삶을 사시지 그러셨나요.
만일 그러하셨다면, 당신 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가 이토록 아프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한 번쯤은 미친 척, 여전히 철없는 아이인 척 당신을 향해 골질을 부려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여 '우리'를 위해 살아오신 까닭으로,
당신의 사랑과 희생과 사랑을 담보로 이 자리에 서있는 나는 그저 원망스럽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해드릴 수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너그러운 척 드높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괜한 원망도 해보다가,
그렇게 당신을 지킬 수없는 나의 무력함을 과녘 삼아 무수한 화살을 쏘아대다가.
나는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기어이 살아냈습니다.
까만 밤의 적막, 그 평화를 깨뜨린 건 소쩍새의 울음이지만,
그것이 소쩍새의 잘못은 아니겠지요.
밤이 적막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그 어둠이 깊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소쩍새의 울음 덕분이니까요.
옛날 사람들은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솥 적다. 솥 적다.'로 듣고 아주 좋아했다지요.
올해는 풍년이 들 것이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다고 말이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습니다.
그 무엇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그 누구도 당신을 탓할 자격은 없으니,
당신께서는 그저, 깊은 어둠을 거두어내세요.
소쩍새의 울음을 듣고
진창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한송이 민들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