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내게로 올 때] 내가, 혹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일을 마친 건가요? 한 사람이 묻는다. 한 사람이 대답한다. 우리 뒤에 올 사람이 알게 될 겁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지요.
-임영태 : 아홉번 째 집 두 번째 대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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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들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었고 나는 멍하니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나는 누굴까?'라는 뜬금없는 물음이 내 가슴과 머리를 뒤흔들었다.
내게는 이름이 있고, 가족이라는 견고한 울타리가 드리워져있으며, 학생이라는 소속감도 있었는데.
그 의문이 든 찰나의 순간 그 모든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허울로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물음이 내게 찾아온 그때, '내 삶이 결코 평안하지 못할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닌 내가 나인채로 살고 있는 느낌, 혹은 진짜인 내가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내가 찾지 못한 내가 내 안에서 꿈틀대다 기어이 소용돌이칠 것 같은 불안.
아주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한데 도무지 기억할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갑갑함이 내 가슴을 잠식했다.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면 무작정 다 내어줄 거라는 어른들의 염려를 듣다 못해서,
'눈 멀어서 하는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린 얌전하지만 골 때리던 아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어대기 바빴던 소녀 시절을 지나서.
진즉에 다 큰 어른이라고,
자기 앞가림 정도는 알아서 할 줄 안다며 성인이라 불리우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당연하게도, 부끄럽게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향해 묻고 있다.
'너는 누구냐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버려야할 것은 진즉에 놓아두고, 포기해야할 것은 깨끗이 접어 미련 한점 남기지 않았건만.
단 하나, 나 스스로만은 내려놓지도, 포기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한 밤.
이런 내가 진저리나게 싫어서, 이런 내가 조금은 안심이 되어서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여전히도 깨어있는 내게, 아직도 잠들지 못한 내게,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직은 말할 수 없는 나일지라도.
조금씩, 천천히 '온 생을 다해 대답하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