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마라.

Betty1983 2014. 11. 30. 00:41

 

 

 

 

멀리서 빈다     作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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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지척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아프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대로부터 한 발짝 즈음 떨어져 있는 일에 더 없이 익숙해졌으니까요.


마치 거짓말처럼,

실로 그러하듯이 어느새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 묻힌 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처럼, 딱 그만큼의 모습을 하고 살아갈 수도 있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에는 여전히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깊고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시절의 그대가 내게 해주었던 말.

'제 기질을 통제하지 못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잘 다듬으면 평범한 사람이 되고, 그것을 넘어서면 예술가가 된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남들처럼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던 그대의 말이 이토록 오래 남을 줄은,

찬바람이 부는 6층 난간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횡단보도 앞에서 붉은 신호등을 뚫어져라 쳐다볼 때,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오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네 삶은 순간순간의 깨달음, 혹은 놓쳐버린 것들을 회한하는 날들의 연속일지라도.

 

미리 지은 며칠분의 밥을 하나씩 패킹하다 말고 비닐팩이 떨어졌다는 사실 앞에 당황했던 것처럼,

당연히 여분이 있으리라 여기다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 스스로가 황당했던 것처럼,

깊어가는 새벽녘,  별 수 없이 집을 나서며 '정말 없을 줄은 몰랐어.' 몇 번이고 되뇌었던 것처럼.

 

내년 2월, 여전히 먼 내 생일은 앞서 기억하고,

'네 생일 즈음 러브레터가 동숭동 무대에 오른다더라. 딱 좋아.'라는 문자를 남겨놓는 그대 덕분에,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내 가슴은 또 다시 같은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대가 나를 잊었거나,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대의 평안을 담보로 나는 기꺼이 괜찮았을 것이나,

그대가 나를 잊지 않아줘서, 영원히 그러할 것처럼 여전히 기억해 줘서 고맙습니다.

 

어느덧 깊어가는 가을, 내린 비가 고운 단풍잎을 떨구고 지나갔어도,

나의 그대, 아프지 말기를, 부디, 내내 평안하고 또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