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이 길 위에서 그대가 말을 걸면.

Betty1983 2014. 12. 8. 02:37

 


 

 

 

길     作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엔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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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하는 나의 그대,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주 오래 전 나 역시 그대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요.

 

내 삶의 언젠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던 어떤 순간 내가 놓쳐버린 무언가가 늘 가슴 끝에 걸려서,

나는 때로, 혹은 자주 숨을 쉬는 일이 버겁습니다.

 

내가 놓아버렸거나, 혹은 잃어버렸거나, 

그것이 스친 자리를 명징히 기억하는 이 손이 이토록 차가운 것은  

여전히도 그것을 찾아 헤매는 까닭일 테지요.

 

어떤 길이든 다른 길과 통하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 통용되지 않는 나에게,

길의 끝은 늘 막다른 골목, 혹은 굳게 잠긴 문(門)의 연속이었지만,

밝은 날이 지나버린 후에라도 까만 밤길을 비추는 달은 이다지도 환하였으니.

 

눈 먼 장님처럼 오돌토돌한 돌담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이 길을 걷는다한들,

그 무슨 슬픔이 있을까요.

돌담 너머에 내가 찾는 무엇이 있거나, 결국 없더라도 그 무엇이 서러울까요.

 

아무것도 아닌 채로 태어났으니, 다만 무엇도 아닌 채로 살다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떠나기를 소망했던 피폐하기 그지 없는 나에게,

그대라는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처럼 기쁜 것을요.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내가 어떤 의미로든 그대 곁에 머물렀다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니 소중한 나의 그대.

혹시라도 미령한 내가 그대에게 수심을 드리우는 날이 온다면,

그것이 언제든 나로부터 돌아선 채 멀리멀리 뛰어가세요.

 

그대가 깜빡 잊었거나,

부러 적어놓지 않았을 마지막 세구절의 시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사람들,

행여라도 나의 무게가 그대의 짐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대를 보면 그저 말없이 웃고 있는 것은 그런 연유일 것이요.

그런 까닭으로 나,

차마 그대에게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고 많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망합니다.

아주 오랜 날들이 지난 후에라도 우리가 돌담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 함께 걷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