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더 가까이] 나에게로, 혹은 당신에게로.
사는 날이 켜켜이 쌓인다는 건,
그 시간 만큼 생(生)의 모든 순간에 담대해지고, 익숙해지고, 또 덤덤해지는 것인 줄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고, 누군가와 작별해도 아프지 않으며,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인 줄 알았다.
아니, 언젠가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더 없이 다행스럽게도,
나는 처음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람을 가르는 화살 보다 빠른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쏜살 같은 세월 앞에 속수무책 내동댕이쳐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 뿐이라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가는 부모님을 뵐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쿵' 소리를 내곤 한다.
내가 아픈 것은 내 탓이지 그 누구 때문도 탓도 아닌 것처럼,
두 분이 쇠해지는 것 또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나는 수시로 자책하게 된다.
아픈 나를 볼 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만 가는 나를 볼 때 두 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나는 자꾸만 마음이 쓰여서,
가슴 한편이 싸해서 무엇이든 챙겨 보내려고 하고 수시로 안부를 묻거나 실없는 농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이름난 효녀도 아니고, 그다지 좋은 딸도 아니며, 여전히 미성숙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만,
한사람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덜 방도는 없다 해도, 나는 그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다.
덜컥 내려앉는 가슴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담고 결코 익숙해질 도리가 없는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얼마나 자만하고 무지(無知) 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아무도 몰래 한숨을 삭인다.
'나는 괜찮지가 않은 것 같다. 괜찮을 리가 없다. 아니, 도무지 괜찮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두렵고,
누군가와 작별해야 한다는 가정만으로도 해묵은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무엇을 자신하여 그토록 고개를 빳빳이 들었던가.
살면서 성숙해진다는 것은 매순간에 담대해지는 것도, 덜컥 찾아온 작별 앞에 담담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은,
삶의 매순간 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 이별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아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의 귀한 사람들을 헤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