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걸다] 한사람을 위한 마음.

Betty1983 2015. 9. 30. 21:39

 

 

 

 

 

지우면서 쓰는 말     作 : 이제야

 

지나는 마음과 넘기는 마음,

사이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흩어진 계절을 지나

다음 계절로 당신을

 

바래질수록 선명해지는 시간

이 계절을 무엇이라 부를까

 

빈 자리, 영원한 기억의 다른 말

 

지나가면서 지나지 않는

넘길수록 남는 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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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사람만을 사랑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일은 기쁘고도 슬픈 일이다.

선약이 아니면 좀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그대의 연락 한통에 모든 사고가 정지될 때,

그렇게 언젠가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작정 그대에게 달려가게 될 때 나는 가장 나다운 내가 된다.

 

가을볕에 곱게 익은 사과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맞으며 활짝 웃는 그대를 볼 때,

선약을 할 때와 달리 편안한 옷차림의 나를 향해 농을 건네면서도 '늘 예쁘다.'고 말하는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때,

덥석 내 손을 잡고 '이제 너하고 싶은 거 하러가자.'며 천진한 아이처럼 신이나 있는 그대에게 이끌려갈 때,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을  열 두 가지쯤 나열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또 변했고, 그날의 나도, 그때의 당신도 아니지만, 우리는 똑같은 우리겠구나.' 싶어진다.

 

열일곱이든, 서른셋이든 나에게 그대는 항상 똑같은 사람,

차려입거나, 혹은 편하게 입더라도 그대에게 나는 언제나 예쁜 사람이니까.

 

칵테일 두 잔에 살짝 취기가 올라서 방글대는 나의 두눈을 바라보며 '샛별이 떴네.'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그대가,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게 중요한 거였구나. 너랑 있었다는 거, 내가 좋아하는 북촌, 거기에 너랑 나 말이야.'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그대의 마음을 내비치는 그대가 '여전히 나의 그대'라는 것을 느낄 때면,

나는 그것이 언제든, 그곳이 어디든, 아무도 모르게 그대를 사랑하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 좋아하는 맥주를 시켜놓고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우리,

 내 접시가 빌 때마다 그대가 잘라 놓아주던 피자와,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던 Lp 전문 카페, 잔잔한 그대의 목소리까지,

그 밤, 선선하게 불어오던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나는 아주 잠시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두에 취한 채 새삼스레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져버린 이유는 그 무엇도 그대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요,

그대와 함께할 때 좀처럼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은, 그저 함께면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도 대부분의 날들을,

 함께하고 싶은 일들을 함께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겠지만 이것으로 나는 족할 테니.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소소한 순간이 이처럼 선명한 까닭은,

아무리 오랜 날들이 지나도 너와 나, 우리 삶의 모든 페이지에 서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