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이 비가 그치고] 온전한 내가 남는 시간.

Betty1983 2015. 11. 23.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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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달래가면서 써주면 그럭저럭 잘 버텨주다가도,

한 번 무너기시작하면 일시에, 걷잡을 수 없는속도로 흐트러지는 나의 컨디션은 꼭 심술쟁이 아이를 닮았다.

평소에 제 몸에 그다지 친절하지도, 살뜰하지도 않은 주인이라 한 번씩 앓아도 할말이 없기는 하지만,

문제는 친절하지도, 살뜰하지도 않은 만큼 지랄 맞기도 해서 이틀 이상 아픈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내 상태가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좋지 않을수록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 것은 오랜 습관이라서,

(처방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는 약이 필요할 때는 부모님께 SOS를 치기도 하지만 늘 '괜찮다'고 말하며 통화를 끝낸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링거를 두 세개쯤 맞고, 주말 내내 한의원에 출근도장을 찍는 방법을 써서 속성으로 털어낸다,

 

덕분에 병원비가 만만치 않지만 그것보다 아픈 것이 더 스트레스고,

회복을 위해 잘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비싼 보양식 먹는다 생각하고 병원에 돈을 바르게 되는 것이다.

(아픈데 혼자인 것은 힘들지 않지만, 아픈 나 스스로가 성가셔서 괜한 짜증까지 솟는다.)

 

무엇보다도 어릴 때 이런저런 일로 병원신세를 질 일이 많았던 나는,

누군가가 아프다는 사실이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 많이 봐와서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고,

응급상황이라 119에 실려가야 한다던가, 생명이 위중하다던가 하는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혼자 해결하는 편이다.

 

이처럼 여러가지로 성가시지만 그래도 한 번씩 앓고나면 좋은 점이 있는데,

스스로 더욱 차분해지고, 고요해져서 주변의 소리가 좀 더 잘 들리고, 나의 모습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한편 걱정도 되지만) 혼자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한고비 넘긴 기분에 개운하기도 하다.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방식일지라도 오늘도 나는 이렇게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