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사를 빌려서] 태양, 혹은 사람의 후예.
군인은 늘상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만한 각오로 군복 입었으면 매순간 명예로워라. 안 그럴 이유가 없다. -김은숙.김원석 : 태양의 후예 中에서- |
이상형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낸지 옛날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피부가 하얗고 예쁘장한 외모를 선호하고,
(단, 남자의 경우 지나치게 선이 가늘거나, 속된 표현으로 기생오라비 같다면 내 시야에서 아웃된다.)
키는 최소 178Cm 이상에 맑은 눈과 예쁜 웃음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갖고 있다.
(더 지랄맞은 것은 선이 굵으면서 잘생긴 얼굴은 눈에 차지 않아서 그 중간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렇게 외양을 보는 눈이 정수리 꼭대기에 달려있으니 현실에서 진즉 포기한 것이 사람의 외모이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는 모르겠으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잘생기고 예쁠수록 이유 없이 너그러워진다.
(키 178Cm는 아빠의 신체사이즈인데 TV에서 '잘 생겼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빠만은 해야 성에 찬다. )
이다지도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내가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계기는 지극히 단순했다.
남녀 주인공의 케미스트리(시각적인 만족도)가 훌륭했기 때문인데,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남녀 주인공의 투샷이 잡히면 매번 '아, 예쁘다.'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업데이트한 사진은 재난현장 투샷인데, 땀범벅에 검댕을 묻히고 있어도 저처럼 예쁘니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보다 보니 재미가 쏠쏠한 것이 그 다음회가 궁금해지고, 기다리게 되고, 또 설레게 되었다.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단백질 흡수율이 제일 좋은)1시간 내에 저녁을 챙겨 먹고 나면 한창 딴청을 피우던 내가,
드라마 방영일이 되면 시계를 확인해가며 본방 시작 전에 집안일을 끝내려고 연신 종종거리곤 하는 것이다.
매번 심쿵 유발 돌직구 고백을 일삼는 유대위와 매순간 사랑스러운 강선생이 예쁜 건 말할 것도 없고,
서상사(진구)와 윤중위(김지원)의 사랑도 메인커플을 능가하는 애절함을 탑재하고 있으니 이미 기본 이상인데.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였어도 이 드라마는 내 눈과 귀를 즐겁게하고 잊혀지는 한편의 이야기였을 텐데,
유시진(송중기) 대위의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이 인물의 무게와 사람의 고뇌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존재만으로도 감동인데, 저 은혜로운 모습에 개념까지 있으면 어떡해!'라며 감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게 되자 그 사람의 사명감, 가치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중심이 보이고,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과 그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곳에는 가족을 위해 평생을 일하다 사고로 돌아가신 누군가의 아버지가 있고, 갱단에 억압된 소녀가 있고,
변심한 전직 특공대원도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밉살스러운 짓을 일삼는 건설현장 책임자도 있었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숨을 다한 그분 앞에서 진심어린 존경을 담은 경례로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유대위가 있고,
강남에 병원을 개업해서 떼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재난현장으로 돌아와 다친 이들을 치료하며,
갱단에서 구출한 소녀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한사람의 미래를 바꿔보고자 애쓰는 강모연(송혜교)이 있었다.
(외모적인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이런 남자, 이런 여자, 이런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겠다는 생각,
어떤 것이 중요한지, 그 무엇이 귀중한지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사람이라면 나를 걸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현실에는 유대위 같은 군인도, 강선생 같은 의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저건 잘 만들어진 픽션이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죽은 뒤에 갈 천국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걸까.' 자주 의심스럽고,
그저 내 인생에 더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다만 산책이나 하다 떠나고 싶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명예롭지는 못해도 부끄럽지는 않게 살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