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믿어지지 않는 애기]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Betty1983 2016. 5. 9. 00:19







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린 것은 대학 새내기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에 딱 한 번 일어나서 얄궂게도 지금까지 생생한 실수(失手)의 기억이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딸이 남자선배의 등에 업혀 집으로 들어온 일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부모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일을 입에도 올리지 않으셨고 (사실 나는 그게 더 어려웠다.) 한 달 정도가 흐른 뒤,

'다시 한 번 네가 이기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선언하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당시에 쫓겨날 각오까지 하고 있다가.

(말없이 해장국을 끓여주시던 어머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이 괜찮은지 물으시던 아버지가 더 무서웠다.)

그날 일에 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시는 두분께 감사해서, 그게 더 어려워서 안절부절 못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술자리가 생겨도 인사로 한 두잔 정도만 마신 후, 술을 잘 못한다며 입에 대지 않았고 당연히 실수도 없었다.

(술이 한잔만 들어가도 바로 빨개지고, 다음날이면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기 때문에 힘든 게 사실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애는 술 많이 마시면 죽는다.'며 도수가 높은 술은 권하지 않아서 이때껏 내 주량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처럼 술과 친하지도, 친할 일도 없는 나라는 사람이 바로 이틀 전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셨다.

시작은 와인이었고, 샴페인으로 넘어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내 몸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거다.

몇 년 동안 공적으로 얼굴을 알고 지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완벽하게 망가지고 말았는데,

문제는 필름이 끊기 지 않아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술의 도수를 체크하는 일도 잊었는지, 어쩌자고 그렇게 풀어져버린 것인지,

다른 건 잘 잊으면서 그 기억은 왜 이리 생생한지, 나는 처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던 그날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너는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줬지만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무슨 일어나려고 이러는 건지' 덜컥 겁이 난다.

(술 취해서 속된 표현으로 '꽐라'가 된 것이 잘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다. 내 모양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숨고 싶다.)

 

그날 오후에 갑자기 바빠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너와의 약속이 캔슬되지 않고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면,

아니,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씀은 감사하지만 공적으로 뵙는 분과 사적으로 만나지는 않는다.'고 거절했다면,

아니, 밥만 먹고 헤어져서 (밥값이 꽤 나와서 2차는 내가 사겠다고 말했던 건데 ) 진즉 집으로 돌아왔다면,

아니, 적어도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내가 실수 할아버지를 했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당신이 했던 말처럼 우리가 정말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든) '당신에게는 가끔, 혹은 자주 있는 일이라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종종 해주는 말처럼 '괜찮다. 괜찮다. 무슨 일이 있었던 다 괜찮다.'고 애써 되뇌어 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너만 있으면, 너 하나만 있으면 그럭저럭 잘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이것은 조용한 내 인생에 찾아온  잠깐의 스침,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지, 나는 또 다시 도망가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