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발자취]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죽어도 된다. 안달하지 말자.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그런 생각 많이한다.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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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감독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 만큼도 없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 여자의 남편, 딸의 아버지로써 도덕적인 판단을 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좋은 선택을 하지 않았어도 (두 여자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으니) 비겁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연녀의 경제적 손실을 메워줘야 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서,
(불륜은 둘째고 본인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다는) 딸의 유학비 지원까지 끊는 처사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랑이라는 핑계로 저렇게까지 정신이 나갈 수 있는지 부럽기도 하고,
긴 세월 제 부모 병수발 든 조강지처, 자신의 핏줄인 딸마저 외면할 정도로 미친 거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싶기도 하다.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처럼 사랑에 미쳤더라도 이 사람과 같은 선택을 할까.' 문득 골똘해진다.
나라면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가 아끼는 사람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으리라는 생각,
내 사랑을 이유로 그의 삶이 흔들리고, 무너지다, 끝내 부서진다면 나는 도저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모든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부러운 것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그의 선택이 설령, 사랑을 빙자해서 도의적인 책임마저 져버리고 제 욕심만을 채우려는 추악한 욕망에 불과하다 해도,
세간의 입방아처럼 시간이 지나고 남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평생의 멍에로 따라다닐 주홍 글씨뿐이라 해도,
사랑이든, 욕정이든, 인생에 한 번쯤, 정말 제대로 필라멘트가 나가서 한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수 있다는 것.
나 또한 (두려워서 도망 다닐지언정) 사랑 앞에 나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고,
설령, 그토록 피해보고자 애쓴 당신이라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내게 오기를 소망한다.
끝내 이 마음 잘라낼 길이 없는 거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당신 곁에서 마음껏 소리내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