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위로] 누군가 내게 남긴 것.
나의 커피스승님께서 (나는 스승님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선물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면서 그분을 생각한다.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커피콩을 뻥튀기기계에 넣고 튀겨보셨다는, 로스팅을하다가 공장에 두 번 불을 내기도 했다는 그분.
커피는 개인의 취향이라 맛의 기준이 없고, 좋은 커피를 쓰면 누가 내려도 맛있으니, 맛있게 마시면 된다고 알려주신 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수익사업이 되는 것이 불편해서 협회마저 탈퇴하셨다는 멋진 분이다.)
(자격증 하등 소용도 없는데 왜 따냐고도 하셨다. 커피협회 좋은 일 시키는 거라고, 한 번 봐서 떨어지면 보지 말라셨다.)
항상 웃는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웃음자리를 따라서 멋있게 그려지는 주름을 지니셨고,
(선생님이라고 늘 즐거운 것도 아닐 텐데) 네거티브의 아이콘인 내게 늘 포지티브한 피드백을 주시던, 날 많이 웃게한 분.
(이분이 내 오라버니였다면, 아니, 수업으로 인연이 끝나더라도 좀 더 빨리 뵐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이분 앞에 무장해제 되어 순간이나마 즐겁게 웃으면서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게 내가 참 많이 울고 싶었구나.' 깨달았다.
무언가를 배우지 않더라도 그분의 제자로, 혹은 인생선배로 뵐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누군지 몰라도 아무런 사심 없이, 그 어떤 계산도 없이 그저 그분이 좋았고 이유 없이 속내도 터놓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분은 내가 얼마나 본인을 좋아하는지 모르실 거다. 사실 내가 얼마나 까칠하고 냉정한지, 또 얼마나 낯을 가리는지도.)
그분을 뵙는 시간동안 흐르는 날들이 아깝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서로 진심으로 웃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스레 자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뵐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다시 웃을 일이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를 향해 환히 웃던 그분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분은 다만 수업을 하셨을 뿐이라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내게 남겼고, 나는 그 덕분에 울고 싶고 또 웃고 싶다.)
레드 폴라티와 스커트를 입고 갔을 때, '거기 루돌프 언니'라고 불러주신 것도,
(클래스에 여러 별칭들이 있었는데 개중 가장 예쁜 별명이었던 탓에 기분도 좋았고 덕분에 나는 루돌프 학생이 되었다.)
(긴장하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며) '긴장만 하지 않으면 붙어요'라고 서툰 내게 격려를 해주신 것도 내내 감사드린다.
그분은 내 유일한 커피스승님이고, 내가 그분의 제자여서 기쁘다. 합격소식 꼭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