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내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기억] 너를 사랑한 시간.

Betty1983 2016. 4. 30. 16:33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많은 것을 잊기 시작했다.

한권의 책을 다 읽고난 후 다른 서적을 읽기 시작하면 그전에 보았던 책의 내용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갸웃거리며 책장에서 꺼내 펼쳐보면 밑줄까지 그어져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불과 얼마전에 만난 지인이 그때 했던 이야기를 상기시켜도 '그때 그런 애기를 했었어?'라고 되 묻는 것이다.

 

물론 가족들의 경조사라던가,

내가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 혹은 (어떤 성질의 것이든) 상대방과 약속이 정해진 일이라면 칼 같이 지키는데,

만난 사람의 생김새라던가, 당시의 에피소드, 주고받았던 대화 같은 것들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공백이 생긴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아니었다.

예전에 교류가 있던 지인이 내게 붙인 별명이 '별 걸 다 기억하는 여자'였는데 그 사람이 누구고 어떤 관계이든,

사적으로 시간을 들여 만난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소소한 취향부터 사소한 몸짓까지 기억하는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영화를 볼 때 물 외에 다른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었는데,

정작 늘 물을 사던 그 사람은 자신이 그런 습관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내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당시에도 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 오렌지주스를 골라서 나를 웃게 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잔에 담긴 물을 볼 때 당신은 거기에 맺히는 물방울을 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나에게 극도의 피곤을 느꼈고, '이러다 머리가 돌거나 죽겠구나.'싶어졌던 것 같다.

나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에 시달리며 또 다시 스스로를 들볶았고,

사고를 정지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한 욕망을 낳아, 그 욕망은 결국 또 다른 사념(思念)으로 나를 옭아맸다.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나를 내몰다가 어느 지점에서인가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브레이크를 밟았던 것 같다.

아니, 정신을 차려보니 내 의식은 아득한 낭떠러지에 위태로이 걸린 채 세차게 요동치는 새까만 물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살아야한다는 자각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에야 나를 억누르던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소소한 것들을 곧잘 기억할 때에도 내 삶의 사이사이, 어떤 지점에 대한 기억들은 백지상태였는데,

(트라우마가 될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무의식은 스스로를 평안케하고자 그 시간들을 지워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 시간들을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무의식이 지워버린 시간과,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내려놓은 나 자신을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었을 때,

너의 말처럼, '외로움 병에 걸려서 내가 외로운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진정 내가 남기고 싶은 것들을 본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지만 가능하다 해도 대단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와 나눈 대화조차 곧잘 잊어서 당황하지만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다 잊어도 너를 잊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은 뭘 먹고 싶은지, 몇 년 뒤에는 뭘하고 싶은지, 지금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물어주는 네가 있어서 기쁘다.

나조차도 잊었던 나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땅히 꿈꿔야하는 미래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네가 고맙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닐 것이지만,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잉여로 살든, 그저 생각 없는 사람처럼 헤헤거리든 행복하고 싶다.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시간, 소소하게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지극히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