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Betty1983 2016. 8. 23. 15:08




          

          너를 기다리는 동안     作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곳에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혹은 내 기다림이 끝날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제처럼 일하고, 책을 읽으면서, 습관처럼 운동을하면서도 나의 에너지는 당신을 기다리는 일에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당신을 기다리는 오늘이 지면, 또 다른 기다림으로 내일이 밝고, 당신이 오거나, 혹은 오지 않아도 이 순간은 지나가겠죠.


당신 역시 보통의 지인들처럼 착각하거나, 다만 무관심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웃는 사진 한 컷, 종종 바뀌는 짤막한 메시지 한줄로 나의 안위를 가늠하고, 잘 지내는 것이라 속단할 수도 있겠지요.

잘 지낸다는 말의 의미가 표면적인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것에 국한된다면 나는 잘 지내는 것이 맞기도 하네요.


그러나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내 인생에서 지나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이 기다림이 끝남과 동시에 영영 없으리라는 사실을요.

내가 져버린 나의 원칙과, 스스로를 배반해버린 나의 진심을 당신에게 강요하는 것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모르는 나의 공간에나마 이 마음에 솔직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을 테니까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평소의 나와 다른 내가 되어갑니다.

내가 고수해온 모든 원칙들을 내 손으로 져버렸는데 그 무엇을 확신하고,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겠나요.

아니, 그 누구라도 아프게하면, 혹여 이기심을 부리면, 내게 오려던 당신이 걸음을 돌릴까봐 겁이 납니다.


그리고 나와 만났던 그날 다친 발목 때문에 아파하던 당신,

제 생일마저 잊을 만큼 바삐 사는 당신이 걱정 되고. 염려 되다, 어리석다 해도 상관 없을 만큼 보고 싶습니다.


Soul mate조차 신랄하게 비웃은 나의 마음은,

당신 없이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밀어 올리다, 미친 것처럼 만개하여 지는 날도 잊고 내내 피어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그 흔한 약속도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니 만나나질까마는, 문이 열릴 때마다 내 가슴은 덜컥이며 내려앉고,

나는 오늘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에게 가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모든 얼굴이 당신인양 예쁘게 웃습니다.


이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부디 당신이 나에게 와주기를,

모두가 헛되어 이 마음까지 종말을 맞은 후에야 내게 오는 거라면 차라리 영영 나를 찾자 말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