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교 영업수업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내가 처음으로 인지한 단어의 의미는 '이상하다'였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 뜻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어른들로부터 '평범해져라, 유별나게 굴지마라, 남들처럼 행동해라.'와 같은 충고를 들었을 무렵에야,
어째서 이 단어가 지닌 의미가 내게는 그토록 무거웠는지, 왜 체기처럼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았는지 깨달았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닥 특이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인사가 평범해지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던 그때부터,
나는 남들처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평범해져야 한다는 강박과, 세상에 대한 이질감에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
(글 몇 자 적는 것을 좋아할 뿐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글을 쓰게 되는 내 감성에 짜증이 났고,
(태연함을 가장한 덕에 드러나지는 않아도)사람으로 인한 부침에 일반적인 것보다 더 많은 데미지를 입는 내가 싫었다.
'내가 특이해요? 아니면 이상한가요?' 가깝게 지내던 지인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정윤씨는 푸른 산에 사는 붉은 단풍 같아요.'라는 대답을 들은 순간부터는 평범해져야 한다는 강박 또한 절정에 달해서,
그저 남들만큼 생각하고, 적당히 심플하게 살면서, 보통의 연애를 하고, 적절한 때에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두 귀찮아지고, 죄다 지겨워지고, 지칠 대로 지쳤던 것 같다.
(사람을 그토록 좋아했으면서도)마음 아픈 것이 싫어서 매사에 무뎌지려 애썼고,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람을 멀리 했으며,
그렇게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만사에 신경을 끄고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살면서, 스스로 이방인인을 자처한 나였으니까.
어쩌면 이런 내 시선 끝에서 유진이 밟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검은 머리에 조선인으로 조선에서는 검은 머리에 미국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생이 그저 애달파지곤 했다.
하여, 살아남는 것 빼고는 제 삶에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었던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더 없이 행복하게 웃었을 때,
꽃잎을 주워 편지에 동봉하면서, 그 여인의 답신을 읽으러 가는 걸음을 서두르던 나머지 아이처럼 넘어지고 말았을 때,
'너는 행복하고 행복해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지켜야 할 유일한 의무는 다만 행복한 것뿐이다.'라고 속삭였던 것 같다.
그저, 살기 위해 사는 동안 제게도 사랑하는 이가 생길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을 유진이,
'바다에 가자'는 정인의 답신 앞에서 놀라움에 멈칫하면서도 짙어지던 그의 그늘이 내 얼굴에 드리운 것인양 마음 아파서,
평생 남들처럼 살아보지 못했을 유진과, 이때껏 남들처럼 살아보려 애쓰다가 화석이 되어버린 내 가슴이 안타깝기도 했다.
아마도 유진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 나를 안타까워할 줄도 모른 채 버석한 채로 살았을지도 모를 일,
'헛된 희망이라도 살아만 있게 하시면 나는 듯이 가겠다.'던 그의 간절한 기도가 아니었다면 희망의 가치를 잊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유진이 고맙고, 또 아프다.
행복을 꿈꾸지는 않아도 살아가는 동안 사람처럼 살기 위해 마땅히 지녀야할 희망을 내 손에 쥐고 걸어갈 수 있게 해줘서,
메마른 내게도 유진처럼 뜨겁고 순연한 마음이 살아있어 헛된 희망에 나는 듯이 갈수도 있을 거라 믿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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