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Drama/글속愛빠지다

[사랑의 무게]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No.17

Betty1983 2012. 10. 9. 01:00

 

 Photo By : Mr.Yang Thanks For Your Present. ^^

 

 

                                                                                                         내가 먼 길을 돌아 찾아온 자리가,

                                                                                  끝내 그대이기를 바라는 내 진심을 기억해준다면,

                                                                                                               내 생의 언젠가 꼭 한 번만은,

                                                                                               그대를 찾아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올게요.

 

                                                                                                                                -Betty : 無題-

 

 

 

우는 다은을 겨우 달래어 간이 탁자 앞에 앉힌 준서가 초밥을 꺼내놓았다. “우선, 먹읍시다.”

멍하니 초밥을 바라만보고 있는 그녀에게 억지로 젓가락을 쥐어주고 앞에 앉은 남자에게서,

언젠가, 자신의 서툰 저분 질을 타박하면서도, 손수 갈치의 살점을 발라주던 준우가 보였다.

 

겨우 그친 눈물이 다시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이럼 안 되잖아, 너 그 사람 감당 못할 거야.’

젓가락을 힘주어 잡은 다은이, 연어 초밥 하나를 입에 넣은 뒤, 꾸역꾸역 삼키 보려 애썼다.

‘콜록콜록’ 조밥의 절반을 목으로 넘기기도 전에 그대로 사래가 들렸다. 제 가슴을 쓸어내며

기침을 멈추려고 애쓰는 사이, 애써 누르고 있던 눈물이 먼저 방울방울 탁자를 적시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당신이 웃을까요. 당신을 울게 하려고 내 옆에 둔 게 아닌데 어떡하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하는 당신, 걱정이 돼서 사온 초밥 하나도 못 삼킬 만큼,

그 정도로 그 녀석한테 가고 싶은 거예요? 모른 척, 내 어깨에 조금만 기대주면 안 되나요?

 

당신이 원하면 언제든 보내줄게요. 정말 내키지 않지만 가겠다면 내가 깨끗이 포기한다고요.

그런데도 안 되겠어요? 지금은, 당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지금이라도 내 옆에 있으면,

그럼 정말 안 되겠어요? 내가 들어줄게요. 나 이용하라고 했던 말 그새 까먹어버린 거예요?“

 

“저도 모르겠어요.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 갈수가 없고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도 없어요.

저 어릴 땐, 영원한 사랑이니 뭐 그런 거 참 잘 믿었는데, 그래서 그 친구가 죽었다 했어도,

끝끝내 못 잊고 마음에 둘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막상 그 사랑이 현실이 되니까 겁만 나요.

 

그 사람한테 돌아갈 수도 없지만, 누군가한테 기댈 수도 없어. 영원한 게 있기는 한 걸까요?

내 목숨보다 사랑한 은우도 가버렸는데 내가 다른 사람한테 기댄들 그 사람은 안 떠나나요?

은우를 사랑할 때도 죽을 만큼 아팠는데,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들끼리 기대면, 좀 나을까요?

난 그냥 숨어버리고 싶어요. 은우도, 준우도, 당신도 다 무섭기만 해. 모순이지만 난 그래요.“

 

그녀의 말을 듣던 준서의 입가에 작은 한숨이 걸렸다. 언젠가 그랬듯, 그녀를 차에 태운 채,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여자의 죽은 연인도, 그녀를 아프게 하는 준우도, 그녀를 보면서

이미 떠나버린 지수를 떠올리는 자신도 없는 곳으로. 오로지 그녀와 단둘이 숨 쉬고 싶었다.

‘덥석’ 언젠가 준우의 곁에서 울고 있던 지수의 손을 잡았단 것처럼, 그녀의 손을 찾아 쥔다.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휘황한 샹들리에와 허리와 등을 깊숙이 받쳐주는 앤티크 색상의자들,

잔잔하고 몽환적인 재즈보컬의 음성과 테이블과 잇닿은 창가로 비치는 그림 같은 풍경까지,

워커힐 스타 라이트의 야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예뻤다. 한강대로를 일제히 비추는 가로등과

주의 깊게 자신을 응시하는 준서의 눈동자가 미묘한 울렁임을 일으켰다. ‘도망갈까. 그럴까.’

 

은우가 떠나버린 뒤부터, 사람에게 마음을 쏟는 일이 부쳐올 땐, 무작정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 선택이 옳거나 그르거나,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지켜주는 안전지대’ 더 무엇을 망설이나.

다은은 와인 잔 윗부분에 자신의 손으로 끊임없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남자의 말을 듣는다.

 

“공교롭게도 준우의 약혼녀를 좋아했어요. 그 녀석은 정략결혼이라면 질색을 하던 놈이라서,

좀처럼 그 여자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내내 겉돌았죠. 그 여자, 지수가 진심인걸 알아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목에 뭐가 걸린 듯 갑갑하고 불편하다고 했어요. 지수가 많이 울었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여자인데, 참 밝고 예쁜 사람인데, 우는 걸 보고 있자니 답답했어요.

처음에는 그저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나중에는 사랑이 되더군요. 근데 못 잡았어요.

그 여자가 보내달라고 사정하는데, 둘 사이에서 더 이상 아프기 싫다는데 잡을 수가 없었죠.

 

근데 당신을 처음 본 날, 준우 아버지를 만나고 아파하는 당신이 눈에 보이더군요. 틀림없이

웃는 얼굴이었는데 말입니다. 고질병인건지 그 후부터 이유도 없이 당신 주위를 맴돌았어요.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버려서, 지금은 나를 속일 자신이 없어서......“

 

그 순간이었을까. 균일한 음을 내던 레코드판이 튀듯이, 와인 잔 위를 맴돌던 그녀의 손길이

소스라치듯 멎었다. 스타 라이트의 고급스러운 외관, 향기로운 와인, 좀처럼 만나볼 수 없을

아름다운 야경마저도, 끝없이 되풀이 되는 물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남자에게로 달아나면,

이 고백을 듣고 나면, 너는 정말 행복하니.‘ 아니었다. 도저히 그렇다고 우길 자신이 없었다.

넋을 놓고 있던 잠시가 무색하게 행여 준서가 그 다음 말을 뱉게 될까, 다급히 말을 쏟는다.

 

“저랑 닮았네요. 사실 저도 당신처럼 살았거든요. 은우, 그 친구를 숨 찰 정도로 좋아했지만,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릴 자신이 없었죠. 고작나이 열일곱에 누군가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이 사람만 있으면 세상 무엇도 두렵지가 않다고, 그를 위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싶다고,

어떻게 말을 하나 싶었거든요. 제가 나름 모범생에 애늙은이라 머리 터지게 생각만 많았죠.

 

반듯하고 착하다는 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잖아요. 그때는 그걸 왜 몰랐을까 싶긴 한데,

그래서 후회했어요. 적어도 이야기는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말은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싶어서요. 떠난 걸 알고 또 생각 했었던 것 같아요. 널 사랑한다,

적어도 이 말만은 진즉 해줄 걸 그랬다고. 되든 안 되든, 적어도 내 마음은 말할 걸 했어요.

유일한 변명이라면 내가 어렸다는 건데 저는 지금도 준비가 안 됐나 봐요. 또 도망쳤으니까.

혹시라도 절 마음에 두셨다면, 끝까지 당신을 속여 줄래요? 그게 날 위하는 거니까. 갈게요.“

 

 

 

그녀가 돌아서려는 찰나, 준서의 강인한 손이 허리를 휘감았다. 당황스러움보다 먼저 찾아온

곤혹스러움이 그녀의 낯빛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후우’속으로 한숨을 삼켜낸 그녀가, 어렵게

준서의 손길을 때어내고 걸음을 재촉했을까.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해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

 

“이사님......” 다은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찰나의 순간, 준우는 죽일 듯이 그녀를 노려본다.

 

“그래, 난 당신에게 항상 이사님일 뿐이지. 그래, 그랬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당신은 은우 앞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울 수도, 내 앞에서 영원한사랑 어쩌고 떠들 수도,

다른 남자의 손길에 흔들려버릴 수도 있는 여자였군. 무섭고 두렵다며? 갈대보다 더 우습게

꺾일 수도 있는 마음이라 자신이 없었나? 내가 지금 무슨 마음으로 달려 왔는지 당신은......“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준 미르에게 짜증이 솟았고, 준서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에 오장이

뒤집어지듯 화가 일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저를 보고 눈물을 쏟는 그녀의 얼굴에,

또 한 번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준우는 잇새를 그러 물며 차갑게 돌아선다.

 

 

 

 

 

 

세상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마음에 가감 없이 직면하는 일이겠지요.

이 아이들이 먼 길을 돌아가는 요인 중의 하나가 어쩜,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짜놓은 대로 가고 있어요. 제 스타일과는 별개로, 일부러 뱅뱅 돌리는 거 아니라는.)

 

늘 아름다운 사랑과 변치 않는 마음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지만, 그건 동경일 뿐이거든요.

(마치, 뭐랄까요. 선악과를 바라보는 아담과 이브의 심정? 어쩐지 머뭇거리게 되곤 합니다.)

아마도 준우를 바라보는 다은이 마음이 꼭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두렵겠지요.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年 10月 08日 Am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