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아무도 안 본다고 담배를 버린다고 치자. 솔직히 착한 새끼가 나쁜 일 할 수도 있고, 개새끼가 좋은 일 할 수도 있어. 세상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근데 길에서 아무도 없을 때 담배 버리면 내가 봐.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어? 인간이 그러면 안 돼. 내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야 해.
-배우 최민수 인터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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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주 가벼운 소화불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병증은 수시로 반복되고 횟수가 잦아지면서 위염으로 발전 되었고,
종내에는 조금만 신경이 곤두서도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유발하곤 했다.
겨우 위장이 가라앉으면 아무리 많은 양의 진통제를 삼켜도 가라앉지 않는 두통이 찾아오거나,
링거를 맞아야만 잠잠해질 정도의 지독한 감기, 혹은 팔이나 목을 쓸 수 없을 정도의 근육통으로 나를 괴롭혔다.
견디다 못한 내가 위내시경을 받은 뒤 들은 이야기는 위는 정말 깨끗하다는 다행스럽고도 허무한 진단 뿐.
그즘의 나는 온종일 화가나 있었지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해사하게 웃고 다녔던 것 같다.
돌아가면서 아픈 몸을 견디다 못해 밤이면 남몰래 소리죽여 울기도 했지만,
까무룩 잠이 들고 날이 밝으면 몇 시간쯤은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반짝해서 무작정 버텼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보고자하는 것만 보는 세상의 눈 따위를 가리는 것은 내게 너무도 쉬운 일이라서,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또 틀에 박아버리는 시선을 비웃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나로 행동하던 나는,
늘, 항상,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나 괜찮았고, 괜찮고, 또 괜찮아야 해서 힘들다는 말이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러기를 반년쯤, '이러다 죽겠다.'싶은 생각이 들고 난 뒤에야 나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는데,
제일 처음 때려치운 행동은 습관적으로 미소 짓는 것이었고, 가장 먼저 버린 말은 '괜찮다'는 천편일률적인 대답이었다.
무슨 이야기든 해보라던 그분 앞에서 ,
괜찮다고 환하게 웃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울었던 것은 '참 힘들었겠다.'는 번연한 말 한디 때문이었는데,
당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들어주기만 할 뿐 그 어떤 충고나 조언도하지 않던 그분이 취한 유일한 행동은,
당신 자리 뒤편에 놓여있던 티슈 케이스를 내 앞으로 꺼내놓고 휴지 몇 장을 뽑아주는 것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것은 내 인생으로부터 받은 최상의 위로이자, 최고의 보상이었으며,
처음으로 오롯이 나 자신으로 이해받고, 인정받고, 또 온전히 받아들여지던 유일무이한 순간이었다.
"제가 그렇게 이상해요? 제가 그렇게 예민해요? 제 생각과 행동이 평범하지 않은 건가요?"
정밀검진을 받은 환자가 결과를 통보하는 의사를 향해, '내가 정말 괜찮은 거냐'고 절박하게 되묻는 것처럼
나는 다른 듯 같은 상황, 같은 듯 다른 상황 앞에서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자신의 경험, 혹은 트라우마를 덧대어 섣불리 충고하다 들어주는 여유를 잃는다는 것인데,
그분은 오로지 들어주셨고, 어떤 충고도, 그 흔한 위로도 건네지 않음으로써 내가 나를 일깨우게 해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분이 대부분의 순간 내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어주기만 했던 까닭은 내가 소리내기를 바리서였고,
스스로의 소리에 공명한 내가, 언젠가의 나, 혹은 지금의 나를 치유하게 되기를 기다렸던 것임을.
그분이 나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셨던 것은, 내가 이해되어서가 아니라, 아파하는 내가 아팠기 때문이라는 것도.
비록 그분게도 나의 전부를 소리 내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착한 새끼로 살든, 혹은 개새끼로 살든, 그 어떤 모습으로도 살아도 나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위장에 이어 대장까지 예민해진 나를 위해 부산 오갈 차비를 약값으로 쏟으면서 나는 새삼스레 나를 돌아본다.
'나는 괜찮았지만 괜찮지만은 않았고, 편안했지만 결코 편안하지만 않았구나.' 하고.
"지금 안 고치면 늙어서 고생해요. 삼시 세끼, 단 세 숟갈이라도 밥을 먹어요. 그리고 스트레스 절대 받지 말고요."
아직까지도, 당최 제게만은 정직할 줄 모르는 주인을 위해 알아서 통증을 호소하는 몸에게 미안한 진단을 들으며,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프게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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