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마음속 그 대사

[이 대사를 빌려서] 당신과 나, "빛나거나 미치거나"

Betty1983 2015. 5. 10. 00:29

 

 

 

 

태어났으면 죽을 때가 올 것이고,

만났으면 헤어질 때가 올 것이고,

웃었으면 울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아들아. 살아있음을 즐기거라.

그것만이 살아가야할 이유니라.

 

-김선미 : 빛나거나 미치거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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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주인공의 케미와 엇갈린 러브라인으로 제법 화제몰이를 했던 이 작품에서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딱 하나인데,

어릴 적 여주인공과 헤어진 오라버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와 차를 나누며 어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다.

(물론 여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해주는 상대가 자신의 오라버니라는 사실을 끝까지 모른 채로 그 이야기를 듣지만)

혈육은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옛말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이며, 그와 함께 교감하던 그녀의 눈빛이 선하다.

 

보통의 사람, 우리네들은 봄이오면 칼바람에 살이 에이던 지난 겨울을 쉬이 망각하고,

푸른 녹음 우거지는 무더운 여름이 오면 불과 며칠 전 사늘한 봄비에 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마냥 휘청이던 마음을 지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쉽고 빠르게 기억 저편으로 내몰면서도 정작 현재에는 좀처럼 충실하지 못한다.

 

햇살은 밝고, 하늘은 높고, 사위는 더 없이 고요해서 평화롭기까지 한 오늘 같은 날도 잡다한 생각에 시달리는 나는,

'아, 좋구나.'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든 보따리가 성가시고 집으로 내딛는 그 몇 걸음마저 귀찮을 따름이었으니.

이제는 움트는 새순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설레어하던 그 언젠가의 내가 정말 존재하기는 했었는지 의아할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나의 어미니, 당신의 연락에 어딘가가 간질거리고 끝내는 찡하기까지 했다.

 

'항상 너를 걱정하고 한 순간도 마음에서 잊어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가 너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잊지마라. 사랑한다.'

 

시간이 지나야만 이해하게 되는 일들,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할 도리가 없어지는 순간들, 아무리 오랜 날들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부모님과 나, 당신과 나, 끝내 우리가 되는 우리는 혈연인 까닭에 서로를 이해하고, 말없이 배려하며, 가슴으로 품는다.

 

당신께서 소리내는데 이만큼의 세월이 필요했듯이,나 또한 당신을 온전히 헤아리기 위해 많은 날들이 필요했고,

우리는그 어떤 순간에도 부모와 자식이며,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들여다보듯 당신을 바라보게 되리라는 예감,

내가 빛나거나, 미치거나, 현명하거나, 아둔하거나,  잘났거나, 혹은 못났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당신의 딸이면서 나이고, 나이면서 당신의 딸로 살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마땅히 노력해야하는 일.

나는 늘 당신을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며, 항상 당신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가끔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살아있는 한 당신을 존경하며, 전부를 걸어 나를 지켜준 당신의 사랑을 배우고자 한다.

 

다만, 나의 당신이 그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평안하고 또 평안하기를, 그리고 살아있는 오늘을 즐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