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어쩌면 봄 울렁증]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

Betty1983 2015. 6. 3.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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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주 내내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 다른 것은 너무도 자명해서 부정할 방법도 없는데,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평소와 다름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바삐 걷는 와중에도, 파란 하늘과 아릿할 만큼 여린 연두빛 잎사귀를 향해 자꾸만 쏠리는 시선,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연신 두리번거리는, 내게는 더 없이 익숙한 거리의 풍경들에 문득 가슴이 싸해서, 

 이 눈부신 햇살 아래 서있는 내가 낯설어서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업무 중에는 모조리 잊고 있다가도,

퇴근 길, 인적이 드문 도로가에 밝혀진 가로등을 마주할 때면 나는 자꾸만 가슴 한편이 허해지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몇 시간이고 티브이만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운 시간을 죽이다가,

보름달이 떠야만 본성이 깨어나는 늑대처럼, 깊은 밤이 되어서야 본연의 리듬을 찾곤 한다.

 

조명이 은은한 일본식 주점에 앉아 따뜻한 계란말이를 앞에 두고 정종을 마셔야할 것 같은 기분,

가로등이 밝혀진 거리 어디쯤에선가 이어폰을 끼고 주저앉은 채, 몇 시간이고 그 불빛만 바라보고 싶은 마음,

온종일 무엇도 하지 않고, 녹음이 우거져있는 산책로 벤치위에 덩그러니 앉아있고 싶은 심정,

 

혹은 여타의 직장인,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삼삼오오 불 밝혀진 포장마차에 앉아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로 까만 밤을 밝히고 싶은 소소한 욕망,

비록 잠시라도, 내 것일 리 없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마음들을 양손에 쥐고 마음껏 웃어보고 싶은 욕심.

 

혹은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싶은,

세상 그 어떤 염려나 걱정도 없이 그저 그 사람과 눈 맞춘 채 해사하게 웃어보고 싶은 마음.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온기로 충일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동안 잊고 살아서 차라리 편안했던 열망들이 나를 어지럽히는 지금,

이것이 그저 지나고 말 잠시의 흔들림이라면 어서 빨리,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고 나를 떠나주기를,

만일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표지라면, 이름 모를 당신,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