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漏水) 作 : 김유선
사람 몸이 물이라니 사람 꿈도 물이어서 꿈만 꾸다가 깬 어느 새벽 누수가 되어버린 몸의 꿈을 본다 언제부터일까 누수된 사랑 누수된 믿음 믿음의 70%가 누수되니 말에도 물이 없어 부딪힐 때미다 소리가 난다. |
언젠가의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내게 보여주는 모습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들은 뒤, 바보 같을 만큼 완전하게 믿어버려서 어른들의 걱정을 사곤 했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는 이유, 내 곁을 맴도는 이유가 '나라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친절한 행동의 이면에는 시커먼 저의가 숨어있고, 웃는 얼굴로 타인의 등에 시퍼런 칼날을 꽂기도 한다는 것.
나를 위하는 듯 건네는 안부인사 저변에 깔린 무언의 의도와, 단순한 물음인 듯 나를 떠보기 위함이었던 질문들.
큰 그림이 그려지고 난 뒤, 한 발 물러서서 그간의 정황들을 곱씹어보면 이내 도출되던 서늘한 결론들.
혹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던, (내 기준으로는) 경악스럽기만 했던 진실의 얼굴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자들은 내가 크게 사기를 당했거나 수시로 뒤통수를 맞았나 보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만사를 의심하고 (내게 다가오려는) 모든 이들을 향해 의구심 서린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한 화기(火氣)가 나를 활활 태우는 것이다.
길을 걷고 있어도 매양 허방을 딛는 것처럼 푹푹꺼지던 그때의 심중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추악한 것도 사람이구나.' 깨달음 아닌 깨달음이 나를 찾아온 그때,
그제야 나는 울지 않게 되었지만 더는 웃지 않았고, 낯선 길위를 헤매지 않는 대신, 그 어디로도 발을 내딛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의 내가 의심했던 건 다른 이들이 아닌 매순간의 나 자신, 지금까지도 수시로 돌아보는 스스로였을 테지만.
(그와중에도 천성(天性)은 어쩔 수 없는지, 만사가 귀찮고 사람이 성가신 가운데서도 마음이 기우는 인연이 생기곤 했다.)
나는 여전히 모자람이 많은, 부족한 사람이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이런 생각을 되풀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겪어봐야 아는 것이 사람이고, 겪을수록 알 수 없는 것 또한 사람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일을 겪는 과정에서 서로의 관계에 치명적인 부분을 알게 될수도 있고,
별로라고만 여겼던 사람이 사실은 정말 보석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도 있으니까.
알고 보면 누구나 진상이라던 지인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새벽, 마음이 아픈 당신을 향해 가만히 속삭여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아있지 않았느냐고, 나는 언제나 당신의 곁에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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