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출근길부터 꿉꿉하고, 붐비는 전철 안에서 풍기는 사람들의 체취는 다른 날보다 강렬하다 못해 퀴퀴하며,
온종일 습윤한 날씨 탓에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음은 물론, 제품을 출고할 때도 평소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훨씬 덜해졌지만) 기분이 다운 되고, 안 그래도 멀쩡한 곳이 없는 사지는 더 쑤시는 거다.
딱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이 있기는 하다.
의자가 편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누군가가 서빙해주는 차를 마시며 비 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랄까.
비에 옷이 젖는 일은 당연히 싫고, 질척거리는 거리나 움푹 패인 물웅덩이를 피해가며 걸어야 하는 일은 더욱 싫기 때문에,
늘 책이 들어 가볍지 않은 가방에 우산까지 챙겨 넣고, 날씨를 감안해서 옷이나 신발을 선택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이런 내가 비 오는 날이면 신이 나서 기분이 한껏 업 되는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신기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 기분은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받던 터라 비가내리면 가라앉다 못해 지하로 기어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우비를 입고 뜬금없이 나를 찾아와 새삼스레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거나, '은어 떼가 몰려온다.'는 문자를 남기던 네가,
내게는 의아하게, 나아가 의아함을 넘어선 반가움과 떨림으로, 그리고 여전히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고, 하여 너는 끝까지 알 수 없겠지만,
여전히 비를 싫어하는 내가 비를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네가 생각나기 때문이고, 네가 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한식 보다 양식을 좋아했고, 중식 보다 일식을 좋아해서, 한정식 보다 피자, 파스타, 초밥에 눈을 빛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먹고 싶은 것은 늘 '아무거나'이고, 인도요리를 좋아하지만 네게는 먹으러가자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내게 있어 비는 곧 너고, 넌 늘 내가 늘 생각하던 사람이라, 이제는 내가 널 생각한다는 것도 잊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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