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무간지옥]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Betty1983 2016. 10. 16. 03:37








익숙한 공간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져서 두리번대는 사람처럼,

마치 내것이 아닌 것처럼,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남의 일처럼, 나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는 마음을 그저 방치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거나 말거나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만사에 무관심하고, 매순간 냉담해진 나를 인지하기가 겁난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추억하며 웃게 될 에피소드라는 번연한 표현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의미조차 둘 필요 없는 하찮은 일로 치부해버린 일을 겪어내는 사이 나는 꼭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 


  마치, 거세된 카스트라토가 욕망을 관조하는 시선과 닮았달까.

표면적으로는 기부가 나의 욕망이나 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짧지 않은 시간 이어온 결연을 정리한정도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친숙한 누군가를 더 자주 마주하면서 친밀도를 높이거나, 무언가를 계획하며 기대하는 것 같은,

개인의 삶에 지극히 생산적이라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할법한 일들로부터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만큼 멀어져버렸다.


 화가 나다가, 짜증이 솟다가, 아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다가, '이게 무슨 소용인가' 다 귀찮아져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너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내 삶에 유일무이한 너라는 사람조차 '무슨 의미인가' 싶어져서 겁이 나는 거다. 

너를 두고 떠났을 때, 너를 잡지 못하고 보냈을 때 무의미의 수렁으로 빠졌던 삶이 선명한 악몽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


그래, 내가 실수했다. 아니,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명백한 잘못이다.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마음이 없는 곳에서 사는 일이 지옥임을 이미 깨달은 내가 동일한 선택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시나리오와 배우만 조금 바뀌었을 뿐, 이야기의 골자는 같은 대본을 앞에 두고 나는 또 멍청하게 망작인 영화를 찍은 거다.


옳은 선택, 상대방을 위한 결정, 혹은 세상이 납득할만한 결론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그것이 내 삶의 기준점이었다면 너에게 향한 마음부터가 자명한 오류이니 무엇보다 앞서 수정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무엇도 아니었고, 오롯한 나의 의지였으나, 의지만으로 통제될 마음도 아니었다.


하여, 나의 의식은 마음을 배반했을지라도, 적어도 무의식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견딜 수가 없는 거다.

'지구가 멸망한들 나랑 무슨 상관인가. 타인이 죽는다 해도 내가 알바인가. 내가 줄곧 행복하지 않은데 무엇이 중요한가.'


냉담한 것인지, 회의적인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삐뚤어져버린 것인지, 그조차 '알게 뭔가' 싶은 생각의 끝은 지독한 침묵, 

시기적절하게도 구전(口傳)을 통해서, 혹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내게 돌아온 과거의 망령들은 원치 않는 혼돈으로, 

애정을 담보로 내게 던져진 무수한 말들은  잘 벼린 칼날로 바뀌어 끝내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도 나를 몰랐던 거다.

나는 지극히 좋은 사람, 혹은 반듯한 사람, 또는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살기 위해, 또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약간의 돈이 필요할 뿐, 내 마음에 사는 존재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또 나를 기만했고, 그러고도 무사할 거라 착각했고, 그렇게 행복과 멀어졌다.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