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립다고 말하는 대신 잘 지내기를 빈다.
당신의 안위를 위해 나는 하찮아져도 좋으니,
당신이 영영 행복하기를 빈다.
-Betty : 無題-
간간이 응급의료센터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의료진의 실루엣만 비칠 뿐, 근무시간이 끝난 후
불마저 꺼져버린 대학병원 접수대 근처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다미는 식어버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내 구겨 쥐었다. ‘지용아, 어떻게 하는 게 정말 널 위한거니?’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은 형돈에게 눈길을 던졌다. 마치 어둠속에
파묻히기로 작정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탓에 안 그래도 동그란 등이 더 동그랗게 보였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컵은 금방이라도 아래로 추락할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미는 애써 눈을 돌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입 꼬리를 끌어올린 다음 밝은 목소리를 낸다.
“제가 얼마 전에 정말 보기 좋게 차였거든요? 진짜 일말의 여지도 없이 완전 뻥 차였어요.”
“!!!!!!”
“당황스러우시죠? 그래도 그냥 좀 들어주세요. 저는 지금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한 참이니까.
아무튼 올인 했다 뻥 까였는데 용케도 안 죽고 살았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잘 지냈거든요?
그런데 글쎄, 저랑 20년 가까이 만난 녀석이 소고기를 구워먹다가 뜬금없이 이러는 거예요.
정말 다시는, 두 번 다시는, 절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차이지 말라고요. 도저히 못 보겠다나.
처음에는 좀 황당했어요. 그 녀석한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운적도 없는데,
그 흔한 술 한 방울 입에 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붙들고 늘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나.
아주 반듯하게 잘 지냈는데, 지금만 해도 웃고 밥 먹는데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
“그런데, 지용이 보고 있는 제가 딱 그 심정 이예요. 오늘만 해도 평소에 입에 대지도 않던
과자를 한 번에 다섯 봉지나 먹더라고요. 그러더니 제가 나간 사이에 다 토하고. 약 먹으면
죽은 사람처럼 종일 잠만 자기도 해요. 사고 전에는 어땠게요. 스케줄도 풀인데 일주일 내내
PT를 받았어요. 운동도 싫어하는 애가 녹초가 돼서 집에 오면 곡 작업 핑계로 밤을 새우고.
그러면서 웃어요. 불안할 만큼 밝더라고요. 이해되세요? 괜찮은지 물으면 무조건 괜찮대요.
차라리 망가지는 게 낫지, 피가 말라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이렇게 됐지만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짐작하신대로, 지용이가 기억을 못해요. 식이장애도 나아지겠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기억이 없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 치료 안 시킬 생각 이예요.“
“누님, 그럼 지용이가 기억 못하는 거 말고, 다른 이상은 없는 건가요? 자꾸만 걱정이......”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말을 잇는 남자의 모습이, 그조차 다 잇지 못하고 재차 수그러드는
그의 고개가 그녀를 더욱 심란하게 했다. 남들 눈에는 부족할 것 하나 없는 멋진 스타이자,
제게는 마냥 예쁜 동생이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렵게 허락한 관계.
동생이 아픈 것이 싫어서 무작정 응원했던 두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제 책임인 양 아프다.
“우습네요. 이렇게 걱정하실 거면서 왜 헤어지셨어요? 애가 저 지경 될 때까지 뭐하셨어요?
아니, 그쪽이 그렇게 돌아서면 지용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설마 잘 살 줄 알았나.
저도 두 사람이 잘 살았으면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이게 도대체 무슨 꼴 이예요?“
“누님,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결국은 변명이지만, 지용이가 다치는 게 싫어서 떠난 겁니다.
제가 잘못한 거니까, 잘못인 거 알고도 포기를 못한 거니까 가정 사는 감당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기자들이 저희 뒤를 캤다는 거, 그걸 안 지용이가 일부러 열애설에 약물관련 이슈를
터뜨렸다는 거 알고는 더는 그 아이 옆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용이가 망가질까 봐요.“
“!!!!!!”
“저 죽일 놈, 나쁜 놈, 미친놈 소리 들어도 이혼까지 각오했었습니다. 아내를 만난 지용이가
제 가정 깨트리지 않겠다고 외국으로 돌고, 그렇게 혼자 앓다가 병원에 입원하는 거 보면서,
제가 가진 거 다 내주고 양육권에 친권까지 포기하더라도 저 아이는 지켜야지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기자들이 기사를 터뜨리는 건, 그래서 지용이가 다치는 건 막을 수가 없는 문제였죠.
제가 무작정 지용이 손 붙들고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길이 안 보였어요.
내 옆에 있으면 더 아플 게 보이는데, 그걸 알면서 무조건 옆에 두려는 건 욕심 같았습니다.“
‘피식.’ 그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문득 실소를 흘렸다.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되면 언젠가는
홍역 같은 세상의 질타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용 또한 알았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중에도 지용은 상처까지 함께 감당하고자 했고 저 남자는 손을 놓았다는 점일 것인즉,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함께 감당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닌가.
“차라리 좀 솔직해지시는 게 어때요?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 아닌가. 일단 지르긴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쳐서 이건 아니다 싶던 찰나에 기자한테 사진까지 찍히니 아차 했던 거죠.
눈이 멀었다가 확하고 깨면서 현실이 보였을 테니까 그쪽은 보편타당한 선택을 할 밖에요.“
표정변화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 나직하고 또박또박한 어조, 잘 벼린 칼날과 같은 사실들.
지용의 누나라는 여자를 향해 그는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지용에게 이별을 말할 때,
제 가슴 속에 지치고 버거운 심중이 단 일 퍼센트도 자리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하찮은 변명이 될 것 같아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하다.’
“.......”
“백 번 좋게 생각해서 제 동생 위해 그런 선택을 하셨다고 쳐요. 그래서 결과는 어떤가요??
바라시던 대로 지용이가 잘 지내나요. 그쪽 옆에 있을 때보다 안 아프고 마냥 좋아 보여요?
지용이가, 그 영민한 애가, 그쪽 말대로 기사 막으려고 약물스캔들까지 자처하고 나선 애가
그쪽이 가버리면 잘 살 거라 생각한 거예요? 기억이 있다면 앞으로라고 잘 살 것 같아요??
살아있다고, 숨쉬고, 밥 잘 넘기고, 가끔 웃는다고 그게 사는 건가. 사람이 참 단편적이야.“
“!!!!!!”
“저한테 지금하신 이야기 지용이도 알아요? 아니다. 묻는 내가 바보지. 당연히 모르겠네요.
차라리 상황이 이만저만 하니 기다려달라고, 적어도, 너를 버리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시죠.
그럼 저애는 기다렸을 거예요. 아니, 지금 이 애기 해줬으면 최소한 저 지경은 아닐 거예요.“
“기다릴 애라는 거 알아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혼자 이해하고, 혼자 감당하고 기다리면서,
자기한테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릴 까봐. 그건 정말 못할 짓 같아서 제가 비겁해진 겁니다.
말씀대로, 지용이 기억 찾는 치료는 하지마세요. 저도, 누님 생각에 백 번 동의합니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당신도 결국 본인 하나 편하자고,
당신이 가진 거 지키려고 내 동생 버린 거 아니냐고, 버렸으면 지킬 것 지키고 잘 살라.‘고,
모질게 쏘아 붙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제 옆에 있는 남자의 얼굴이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저기,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한테는 버림받는 게 죽는 거랑 다를 게 없거든요?
극단적인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쪽은 제 동생을 죽인 거예요. 세상이 끝난 거라고!
여전히 그쪽이 그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자각조차 못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예요.“
“!!!!!!”
“죄송한데 험한 말 좀 할게요. 위하기는 개뿔이나! 그럼 처음부터 아예 시작을 말았어야죠.
시작은 합의하에 해놓고, 버리는 건 너를 위해서야하면서 위선을 떨어요? 누가 누굴 위해?
그쪽의 실수는 지용이의 마음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데 있어요. 덕분에 그 애는 숨만 붙이고
껍데기로 살게 생겼다고요!! 물론, 기억이난대도 그쪽 위해서 끝까지 모른 척 할 것 같지만.
아, 비난하는 건 아니 예요. 그쪽 입장 충분히 이해하니까. 무례했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언제 그랬냐는 듯 깍듯한 어조로 사과까지 한 지용의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별도 없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을까. 형돈은 폭격을 당한 고향으로 돌아온 원주민처럼 넋이 빠진
얼굴로 어둠속에 자신을 방치했다. 의식할 새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그의 볼로 흘러내렸다.
‘지용아, 내가 널 버려서 네가 죽은 거라면 나도 죽고 싶어. 아니, 난 너를 버린 게 아니야.
나는 너를 지키고 싶었던 건데, 네가 다치는 거, 힘들어하는 거 볼 수 없었던 것뿐이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 결국은 내 손으로 너한테 상처를 남겨서 미안해.
네가 내 전부라는 거, 너를 놓고는 숨조차 쉴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나를 속였어. 미안해.‘
어느새 새벽으로 달려가는 시간, 암혹 속에 파묻힌 병원로비에서 아픈 사람 보다 더 아프게
한 남자가 울기 시작한다. ‘형도 나한테 약속해요. 나 안 버린다고. 나 안 떠난다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보내주겠다던 제 말에 불안에 떨던 지용의 음성이 되살아났다.
'멸망한 세상의 끝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너도 이렇게 힘들었니. 미안해. 혼자 둬서 미안해.‘
Title : 그리고 그려도 Song By : 정기고
온 세상이 어느새 너로 가득 차고 있어 소리 없이 어느새 그 자리에 있네요 처음 본 순간 너무 떨려 눈조차 볼 수 없어 나는 이제 어쩌죠 숨이 멈출 것 같아요
가슴 시리게 눈부신 너를 안아주고 싶어 바람 불어와 혹시 너 날아갈지 몰라 겁나 너의 미소와 눈물들을 내 가슴에 담아서 언제나 너만을 사랑할래 들켜버린 이 마음 몰래 감출 순 없어요 돌아설 수도 없죠 그대가 여기 있으니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둘 곳이 없다 해도 품에 안았던 너를 그리 보낼 수는 없어
가슴 시리게 눈부신 너를 안아주고 싶어 바람 불어와 혹시 너 날아갈지 몰라 겁나 너의 미소와 눈물들을 내 가슴에 담아서 언제나 너만을 사랑할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너무 아파 견딜 수 없는걸 내 가슴속에 그대를 묻을게 내가 죽어도 좋아 널 지킬 수만 있다면 사랑해
너를 그리고 그려도 더는 볼 수조차 없니 이름 부르고 불러도 더는 들을 수가 없니 아련한 기억 저 멀리에 이 사랑을 감추고 언제나 너만을 기억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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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지용은 진즉 깬 듯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기척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 그녀가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좀처럼 돌아볼 기미가 없었다.
“지용아.....?” 그녀가 걱정스러운 손길로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겨우 뒤돌아보는 지용이다.
“아, 누나왔구나. 자다가 갑자기 눈이 떠졌는데 다시 잘 수가 없어서. 어디 갔다 왔어.....?”
“응, 너 겨우 잠들었는데 바스락거리면 깨울까봐 잠깐 나갔다왔어. 바람도 좀 쏘일 겸......”
“.......”
“......”
“누나, 나한테 칭찬 좀 해주라. 내 선택이 옳았던 거라고, 형은 잘 지낼 거라고 말해줄래?”
“지용아......”
“말해줄래? 형은 나 같은 거 신경도 안 쓴다고. 나만 이렇게 등신처럼 앓고 있다고 말이야.
나는 형한테 먼지 한 톨 만한 의미도 없으니까 제발 정신 차리라고, 이러는 내가 바보라고.
차라리 내가 속은 거라고 말해줘. 아니,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혼내줘. 꼴좋다고 욕해줘.“
“지용아......”
“역시 처음부터 내가 잘못한 거지? 말도 안됐던 거지? 대책 없이 마음 준 내 잘못인 거지?
그래, 누굴 탓해. 형은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예쁜 아기도 있는데. 결국 이럴 거였어.
이렇게 될 일을 내가 우기고, 버티고, 또 애를 쓴 거였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내가......“
“지용아 제발.......”
“누나, 나는 있잖아. 내가 욕심만 안내면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어. 형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거,
그리고 지켜야하는 거, 그거 하나도 안 뺐을 거니까, 같이 지키면서 형 옆에만 있을 거니까,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 줄 알았어. 근데, 아닌가봐. 나한테는 그것도 욕심인 가봐......“
“.......”
“그래도 누나, 어쩜 이래? 내가 뺐겠다고 달려든 것도 아닌데, 형을 내 옆에 두겠다고 마구
우겼던 것도 아닌데 왜 뺐어가? 그냥 숨죽이고 옆에 좀 있겠다는 것뿐이잖아. 주제파악하고
똑똑하게 잘 숨어 있으려고 했어. 그런데 그것도 못 봐주겠다고 뺏으면 내가 뭘 더 어쩌지?
누나, 내가 그렇게 나쁘게 살았어? 나도 모르게 상처 준 사람도 있겠지만 선하게 살겠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어. 대체 왜, 나한테만 왜이래. 아닌가. 나도 모르게 큰 잘못을 했나.......“
듣다 못한 다미가 말없이 성큼 다가가 그저 지용을 품에 안고 도닥였다. 자꾸 눈물이 난다.
‘지용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이렇게 아파하게 될 줄 알았으면 끝까지 말려줄 걸 그랬다.
세상 누가 봐도 틀린 선택이었지만, 그게 뭐든 이번만큼은 네 마음 가는대로 하길 바랐는데,
그래서 더는 사람을, 사랑을 놓치고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데, 지금 너는 더 아프구나.
완전하게 버려져, 완벽하게 상처받았구나. 내가 그랬듯, 네게도 사랑은 지독한 상흔이구나.‘
이혼을 하든, 계속 함께 살든 백 프로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던 남편은 그 말을 지키듯,
그날 이후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를 대하고 있었다.
GD의 사고소식을 접하고 잠시 놀라는 듯 했지만 밖에서야 어떻던 집에서는 동요가 없었다.
유독 담배를 자주 태웠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지만 모른 척할 수 있는 수위였다.
외려 문제는 저에게 있었다. 태연하게 한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면
‘너는 밥이 넘어가?’싶었고, 코미디 프로를 시청하다 웃기라도 할라치면 ‘넌 웃음이나?’ 싶어,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잠에든 얼굴을 보다가 식칼을 꺼낸 적도 있었고,
‘믿어줘야지.’하면서도 남편이 하는 말이나 행동,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어서 숨이 막혀왔다.
용암을 품은 듯 온종일 화가 들끓었고, 이유도 없이 화를 냈으며,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를
분노가 그녀를 돌게 만들었다. 그런 순간이면 멀쩡히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내동댕이쳤고,
남편의 셔츠를 건조대에 널다 말고 갈기갈기 찢기도 했다. 정말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그저
가만히 앉아있던 남편을 마구잡이로 때린 일도 있었다. ‘정말 이러다 정신병자 될 것 같아.’
제 모습을 돌이키며,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그녀의 귓가에 쌍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퍼뜩 현실로 돌아와 부리나케 아이들 방으로 걸음을 옮겼을까. 어질러진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된 방안, 엎어진 간식그릇과 쏟아진 주스 사이에서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움이 난
쌍둥이를 본 순간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무작정 방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싸우지 말랬지!! 몇 번을 말해?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말을 안 들어 쳐 먹는 거야!”
아무나 잡히는 아이를 붙들고 매섭게 엉덩이를 후려치니, 옆에 있던 아이는 겁에 질린 탓에
더 크게 울어재꼈고, 그 울음소리가 그녀의 신경을 자꾸 긁어서 더 큰 화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난지도 잊어버리고 쌍둥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에 몰입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왜 울어? 억울해서 울어? 뚝 그치지 못해? 그만 울어!! 그만 울라고!!!”
“당신, 이게 무슨 짓이야!!! 어린 애가 잘못하면 얼마나 잘못한다고 말로 해도 될 걸 때려?”
언제 온 것인지 모를 남편이 자신의 손을 틀어쥐고 성난 얼굴로 언성을 높이며 끌고나간다.
거실까지 단 몇 걸음, 남편의 완력에 속절없이 끌려나오고도 그녀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그를 밀쳤다. 넘치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거렸다.
“애들 보는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당신 이러는 거 애들 앞에서 엄마인 나를 무시한 거야!!
당신 바람피운 거 꾹 참고 있으니까 내가 우스워? 애들을 때리던 달래던 그건 내 소관이지.
내가 저애들 엄마니까 체벌이든 칭찬이든 알아서 한다고!! 아, 네 자식이 맞으니까 화나니?
G-Dragon한테 미쳐서 이혼한다고 날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새삼 좋은 아빠인 척이야?“
“유라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니. 언제까지 의심하고, 성질내고, 엄한데 화풀이 할래?”
“왜, 잘못했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말해 놓고 보니 지치니? 때려치우고 싶어?”
“그 애기가 아니잖아. 나는 바람피운 죽일 놈이고 개자식이지만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니??
당신한테 씻을 수 없는 죄를 졌다는 거 알아. 그래서 나도 반성 중이고. 화는 내 몫이라고!!
당신이 나한테 뭐라던, 어떻게 하든 다 견딜 수 있어. 하지만 애들은 아니야. 제발 그만해.“
“뭘 그만해? 내가 뭘 했다고 그만해? 네가 다른 새끼하고 바람피웠다는 생각만하면 여전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너희 두 놈 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다고!!! 당장 잘근잘근 씹어서
갈아 마셔도 내 분이 안 풀릴 판인데 그만? 너는 사과했다 이거야? 그러니까 작작하라고??
사람 죽여 놓고 죽여서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용서해라? 지치니까 지랄도 좀 적당히 하고?“
“.......”
‘그쪽은 제 동생을 죽인 거예요. 세상이 끝난 거라고!’ 저에게 상처받은 뒤, 사람이 변한 듯
늘 화를 내고, 매순간 예민해지다가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과도한 채벌을 일삼게 된 아내와,
넘치게 갖고도 모두를 잃어 삶을 포기해버렸던 지용은 같은 상흔을 지닌 채 평생을 살겠지.
지워지지도, 지울 방법도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누구도 아닌 저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자신이 죽어서 이 모든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절망스럽기만 했다.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분리해지니까 피하고 보자 이거야? 비겁한 새끼......”
“유라야, 내가 어떡하면 되겠니. 어떡하면 되는지 알려줘. 화만내지 말고 제발 말 좀 해줘.”
충혈 된 눈을 한 채 애원하듯 속내를 쏟는 남편을 보자 그녀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사실,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는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이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자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견딜 수 없는 것도 결국은 그녀 자신이다.
‘털썩’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능하다면 이 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지옥을 피해 지구 끝까지라도 달아나고 싶었다.
“어떡하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했지? 우리 떠나자. 얼마가 됐든, 어디가 됐든 여길 떠나자.”
아무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유토피아이자 허황된 꿈이라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아파야 한다는 것을,
그 까닭으로 누군가가 아프고 다쳐야 한다면, 그 사람은 저이기를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그 길목에서 저는 이 아이들을 최대한 헤아렸고, 사랑하되 떨어져 바라보고자 노력했어요.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더 아픈 건 누구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이 아이들을 헤아리면서 제 스스로 위안 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마음 한편으로, 자신의 속내를 오롯이 내보일 수 있는 누이를 가진 지용이가 부러웠어요.
현실 속 두 아이에 대한 제 기억은 호주로 출국한 것과 새 앨범을 냈다는 것에 멈춰있어서,
(한 사람은 고정프로를 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단 최대한 어긋나지 않게 가보려 애썼네요.
(얄궂은 제 글이 어디로 향하든 이 아이들만은 행복하길 온마음을 다해 바라고 있습니다.)
쓰는 제가 그러했듯 읽는 분들도 힘드실 텐데 찾아서 읽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7年 07月 16日 Pm 09;24-
덧말 : 이번 글에 삽입된 노래는 듣는 내내 이 아이들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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