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마음속 그 대사

[이 대사를 빌려서] '미스터 션샤인' 끝내 내가 선택할 단 한사람.

Betty1983 2018. 9. 26. 00:38











       애신 : 본국으로 간다 들었소.


       유진 : 작별인사 하러 온 거요?


       애신 : 함께 가겠소. 데려가시오 나를. 미국으로. 부탁이오.


       유진 : 내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애신 : 거절할 이에게 오지 않았소.


       유진 : 한 남잘 이용하겠단 여인이 최소한의 노력도 않네. 화나게. 

                이건 부탁이 아니라 고백을 해야 하는 거요.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니 함께 가자고.

                그럼 난 또 그 거짓말에 눈 멀어 내 전부를 거는 거고.


       애신 : (유진을 바라보며 그저 침묵한다.)


       유진 : 최종 목적지가 어디요? 날 이용해서 어디까지 가는 거냐고.


       애신 : 일본


       유진 : 참 밉네 이여자.





저 시절의 내게 진심으로 연모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독립운동에 가담한 의병이라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한데 기별한다더니 6개월만에 나타났다면,

반년 만에 나타나서 내게 한다는 소리가(나라를 구해야 하니)본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라면,

 "차라리 내게 귀하가 연모하는 이를 데려와 달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수평선 너머라도 다녀올 테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이와 남은 생을 함께 한다면 그 사람이 내 곁에는 없을지언정 세상에 살아는 있다는 의미니까.

적어도 내 손으로 인도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살았는지, 혹시 죽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에 떨면서,

(차라리 대신 죽는다면 기쁘련만)연모하는 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그리 답하는 순간조차 나는 알았을 것이다.

나는 저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저이가 걷는 길까지 지키리라는 것을.

설령 그것이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해도 그것이 그이를 살리는 방법이라면 기꺼이 걸겠노라고.

그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니 부디, 살아남으라고, 그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으라고.
















       유진 : (테이블 위에 깔린 밀가루 위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L V E를 쓴 뒤 O가 들어갈 자리에 반지를 놓는다.)

                이게 내 답이오.


       애신 : (먹먹하게 유진을 바라보며 그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합시다. LOVE. 나랑. 나랑 같이.'


       유진 : 같이 갑시다. 일본으로. 내가 데려다 주겠소.

                일본은 지금 전쟁 중이고 조선인의 입국이 쉽지는 않을 거요.

                (서류 한장을 꺼내어 애신에게  건넨다.)


       애신 : (살짝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받아들고 펼쳐본다.)애신 초이. 초이?


       유진 : 안전하게 입국할 최선의 방법이오.

                 미국에선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오. 일본 입국시 귀하의 이름은 애신 초이요.

                 (반지를 집어 애신의 손가락에 끼우며)이 반지의 의미는 이 여인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라는 표식이오.

                 서양에서는 보통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밀며 정중히 청혼을 하오. 나와 결혼해 달라고.


       애신 : (내내 반지를 바라보면서도 차마 유진과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유진 :  당신이 나를 꺽고, 나를 건너, 제 나라 조선을 구하려 한다면,

                 나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당신 손에 꺽이겠구나. 알 수 있었다고.

                 이리 독한 여인일 줄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고, 알면서도 좋았다고.

                 무릎은 꿇은 걸로 합시다. 미안해하진 말고. 이건 내 선택이니.

                 이틀 후에 출발이오. 역에서 봅시다. 

  

       애신 : (유진이 나간 뒤 그가 주고간 서류와 끼워준 반지를 바라보며 턱이 떨리도록 울음을 참는다.)

                (반지가 치워진 자리에는 O자 대신 I자가 자리하고 있다.)





비록 위조서류일지언정 혼인증명서를 만들면서 유진은 기뻤으리라 생각한다.

(갈길이 달라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몰라도)제가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이 되고, 그 사람이 자신의 아내가 된다는 의미니까.

유진의 청혼 역시 진심이었겠지. 아니, 그는 진즉부터 그녀를 두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사람이 사지(死地)로 걸어가겠다는데, 그 길까지 제 손으로 인도해야하는데, 어찌 그대로 돌아설 수가 있겠는가.


당신이 나를 꺽고, 내 마음을 가져갔다가, 그리도 쉬이 져버릴 것임을 시작부터 예감했음에도,

내가 기어이 꺽였고, 속절 없이 마음을 내주었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받았던 것처럼 유진 또한 그러하겠구나.

그 대가로 제 정인(情人)을 원망하다, 끝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날이 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않겠구나.


 자신의 'Love'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토록 연모한 여인이 바라는 'LIVE'가 시작되는 거라면 그것이 비록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길이라 해도 응원하겠구나.

 다만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언젠가 이 여인의 삶이 평온해지는 날, 너른 바다를 건너 저에게 와주기를 기다리면서,

내 연인에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꺽이겠다는 남자이니, 독한 여인보다 더 독한 사내이니 끝내 사랑하리라.











       (일본으로 향하는 기차에 마주앉은 두 사람, 침묵 끝에 애신이 반지가 끼워진 제 손 한쪽을 테이블 위로 올린다.)


       애신 : 이 지환이 어떻게 어떤 이의 아내라는 표식이 되는 걸까, 생각해 보았소.

                   남편 되는 이도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겠구나.

                   (반지를 내달라는 의미로 유진을 향해 말없이 손을 내민다.)


       유진 : (긴장한 듯 그녀를 바라보며 군복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건넨 뒤 손을 거두려 한다.)


       애신 : (거두려는 그의 손을 붙잡고 반지를 끼워준 뒤 그 손을 애달피 어루만진다.)사랑하오. 사랑하고 있었소.


       유진 : (물기 서린 눈으로 애신을 바라보 다 내내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깊은 숨을 내쉰다.)





애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유진이 내쉬던 안도의 한숨을 기억한다.

나를 이용하겠다면 얼마든지 당해주겠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꺽여주겠다고 다짐했어도 정말 이용만하는 거면 어쩌나,

다만 같이 걷고자 하였어도 그마저도 욕심이라 허락되지 않는다면, 조선이 나를 버렸듯 이 여인도 나를 져버리면 어쩌나.

아플 줄 알았다고 해서 그 아픔이 덜하지는 않은 것처럼, 그 모두를 각오한 유진이라고 해서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제가 가진 전부를 걸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것처럼,

단 한 번도 확언을 주지 않았던 자신의 연인이 언제든 저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살려고 이러는 거요. 안 보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저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이별을 말하던 그녀를 붙든 채,

이렇게 절규어린 연모의 정을 토해내던 유진은 애신이 없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그녀의 곁에서 죽는 편이 행복할 테니까.


이제 유진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설령, 사랑을 선택한 대가가 죽음이라 해도, 진정한 마음을 받고, 그 진심을 품고 떠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리라.

나는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사랑받지 못했고, 끝까지 속아줄 수도 없었으니, 유진처럼 찬란히 빛날 수는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내게 그들을 축복할 자격이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사랑한다. 그러니 그대여 살아남아라."


  









       애신 :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진의 양팔을 붙들고)왜 아직 여기 있는 거요? 배는.

        

      유진 : 떠났소.


       애신 : (놀란  얼굴로)배를 안 탔단 거요?


       유진 : 낭인들을 봤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뛰고 있었소.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불꽃 속으로. 덕분에 불꽃 놀일 봤지. 


       애신 : (염려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이리 무모한 자를 봤나. 


       유진 :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며)틀린 말은 아니오.





낭인들에게 쫓기는 애신을 구하려 본국 복귀 명령도 어긴 유진은 그녀를 구한 뒤, 바보처럼, 아이처럼 환히 웃는다.

(군인이 명령에 불복했고, 자국 공사관에 총을 쏴서 반역죄까지 범했다. 군법상 죽음을 면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웃는 유진을 보면서 '저게 재정신인가. 정말 바보가 아닌가.'하다가, '나 같아도 저러지.'싶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불꽃이 되겠다는 정인을 위해 기꺼이 까만 밤하늘이 되어줄 사람

무용하기 그지 없는 '사랑한다'는 고백 하나에 제 생을 걸어, 모두를 잃고도 겁없이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아름다운 남자.

자신이 무엇을 버린지도 잊고, '당신을 살렸으니 나는 세상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태양 같은 사내.

그와 내가 참 닮아서, 이제는 내가 그와 너무 달라져버려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아름다워서 나는 다시 울컥한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때껏 사랑을 하고 싶다고, 얼마든 내어주리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사랑을 받고 싶다고 소망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조건없이 모두를 내어줄 수 있어도 상대는 나와 다를 거라는 의구심과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나를 아프게 해서, 

(되도 않는 환상을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유진 같은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조자 품어보지 못하게 했다.


이리도 무모한 자, 태양 보다 빛나고, 스러지는 불꽃 보다 안타까운 자, 하여 내게 희망이 된 자.

신(神)이시여, 감히 바라옵건데, 내가 기어이 살아남아 누군가를 다시 만나야 한다면 이제는 당연히 사랑 받게 하소서. 

기도하지 않는 자의 기도도 들으신다면 부디, 유진을 살게하소서. 살아남은 그를 통해 저 또한 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