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를 가까이 살면서,
올 여름 처음으로 떠났던 친구들과의 휴가(休暇).
휴가 일정 중 래프팅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처음 해보는 거친 물놀이에 잔뜩 긴장해 있던 내게,
주변인(人)들의 전언은
안전 장구를 해도 위험한 래프팅에 대한 염려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상황을 봐서 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 놓고 떠난 길.
고속도로에서 보닛에 불이 붙은 차량을 보았고,
5중 추돌 사고로 도착한 레카차를 발견 했으며
과격한 충돌로 인해 완전히 으스러진 사고 차량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도착한 팬션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 종전의 참사를 잊고,
휴가 분위기에 취해 물놀이를 나갔다.
수영을 못하던 내게 친구가 친히 끼워 준 어른용 튜브를 타고,
강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떠다니다 말고,
내 의지와는 다르게 물이 낙하하는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살과도 반대, 내 의지와도 반대로 흐르던 튜브는,
그때부터 내게 조용한 경고를 하고 있었던 걸까.
반대쪽의 수심이 깊지 않음을 확인했던 친구는
내가 떠 있는 자리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 '당장 튜브에서 내리라.'는 친구의 지령을 따르는 순간,
내 발은 강 바닥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았다.
허우적거리지 않으면 자연스레 물에 뜬다는 사전 지식 같은 것은,
그 순간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지 오래,
수면 위를 헤아릴 수 없는 물속에서 전신을 허우적거리며,
숨을 쉬고자 애쓰는 사이, 엄청난 양의 물을 먹었던 것 같다.
'잠시 뒤면 내가 정신을 놓겠구나.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그때, 죽음의 공포나 살고자하는 의지를 앞서 내게 찾아온 것은,
차라리 어서 정신을 잃어 이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몸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력(死力)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그냥 이대로 가라앉으면 편해지지 않겠니.'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명이 하찮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이대로 모든 게 끝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허나, 사람이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던가.
내가 마음을 놓아버린 순간, 나는 구조 되었고, 또 살아남았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물가로 끌려나와, 억지로 삼킨 물에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살았다.'가 아니라, '숨이 쉬어지는구나.'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응급실에 다녀오는 내내, 익사할 뻔한 나보다 놀란 친구들을 다독이고,
맨 정신으로 깨어 있기 힘들다며 술에 꽐라가 된 녀석들을 케어 했다.
끝까지 '괜찮다.'며 웃어 보인 나에게,
한 친구는 '죽을 뻔 했는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으냐.'며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정대로 1박 2일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그때부터 168시간 동안 눈물이 쏙 빠지게 끙끙 앓고 나서야,
내 몸과 마음이 얼마나 놀랐는지 새삼 깨달았다.
단단히 뭉쳐버린 근육 덕분에 팔이나 어깨, 목은 써볼 수도 없었고,
진통제도 듣지 않아 한 시간 간격으로 깨어야만 했던 날들.
그 사이 연락이 되어 '살아 있음'을 송신할 수 있었던 나의 사람들과,
나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해도, 야속하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대 사이에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운 마음과, 말 뿐인 진심을 보았다.
어쩌면 이것은 삶이 죽음을 통해 내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진실일까.
당신이 내게 보인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진정은 아니라는 잔인한 사실이 피부로 다가온다.
이제야 나는, 그대를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만큼 아팠던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고맙다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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