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도 틀림없는 나 자신이고, 나쁘지 않은 것 또한 나 자신이다. 그러나 바라던 인간상과는 정반대인 자신을, 하나하나, 꼼꼼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은 견딜 수 없다.
-마루야마겐지 : 소설가의 각오 中에서- |
지인이 '읽다 토하는 줄 알았다'며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사놓고 책장에 꽂혀있기를 약 이년, 이 책을 읽는데 세달 즈음 소요했으니 퍽 오래 걸린 셈이다.
지인이 이 책을 내게 권할 당시의 나는 '말로는 글쓰기를 즐긴다' 하면서도 매사 심각하기 그지 없어서,
글쓰는 일이 업인 그 지인으로부터 '대작가도 그런 고민은 안 한다'는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책의 내용은 본인이 글을 쓰는 이유나, 방식, 혹은 스타일, 문단에 대한 비평이 주를 이루었지만.)
책을, 아니 활자를 읽는 동안 내가 수시로 떠올린 단어는 '과하다, 넘친다. 부담스럽다.'였고,
'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데 단어만 바꿔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동시에 그때 당시 그 지인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한 가지 공감한 것이 있다면,
글의 저자가 자기 자신, 즉 스스로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는 사실인데.
내가 바라는 나와, 실재하는 나 사이에 도무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할 때,
'너는 어쩌자고 매양 이 모양 이 꼴이니?' 억지스러운 말을 빌어서라도 분통을 터뜨리고 싶을 때,
달아나려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다가오는 나의 맨 얼굴에 진저리를 치고 마는 것이다.
만사에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쏟아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에너지를 경계한 까닭이요.
소리를 낼 때라도 말을 고르는 것은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지나치게 저어하기 때문이니.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지 않고,
끝이 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않는 차가운 성정은 최대의 난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니기를 소망하는 것은 필생의 과제이기도 할 것인즉.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그저 사람들 사이에 묻혀 눈에 띄지 않고 살고자 애쓰지만,
무의식중에 가시거리 너머의 것을 보고, 그들이 말하는 소리의 저변을 듣고자 내밀한 귀를 여는 나.
때로는 통상적인 사고의 범주를 넘어서 세상이 용인하지 않는 것까지 받아들이는 나는.
이런 내가 못 견디게 싫어서,
이런 내가 참 좋아서 세상 밖으로 밀려나기를 자청했는지도 모를 일.
다만,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자각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과하거나, 넘치거나, 부담스럽거나, 혹은 감당할 수 없더라도 그게 무엇이든 결국은 나라는 것.
계속 달아나거나, 잠시 피하거나,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해도 결국은 마주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인정하고, 당신을 이해하고, 우리를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나이고, 또 당신이고, 결국은 우리일 테니.
그러니 괜찮다. 당신도 나도, 우리가 그 어떤 모습이라도 모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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