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동동님께서 선물해 주신 작품입니다.
몇백 년 고스란히 보존되었다가 발굴되면 그 첫 방문자는 무엇을 보게 될까.
오래된 사물에는 세월을 견뎌 온 고유한 질감이 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절들이 희미하게 번져 있어, 단지 먼저 살아냈다는 이유만으로보는 이의 인생을 문득 긴장시킨다.
거기에 보이는 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그것들 속에 시간으로 괴어 있는 낯익은 슬픔일 것이다.
-임영태 : 아홉번 째 집 두 번째 대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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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 당신이 이 방의 문을 연다면 무엇을 보게 될까.
처음 당신을 맞는 것은 아마도,
낯선 공간이 주는 미묘한 긴장과 반사적으로 생겨나는 경계심.
심호흡을 마치고 조금은 여유를 찾은 당신이,
마침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가지런히 정돈 된 살림들이 눈에 들어올까.
신발이 열맞춰 놓인 현관을 지나면, 설겆이 하나 없는 텅 빈 개수대와,
계절에 맞춰 배열된 옷가지, 차곡차곡 개켜져 압축 된 겨울 이불들이 보이겠지.
늘어져 있는 물건이 없는 책상과,
눈에 띄는 곳에 놓여져있더라도 반듯하고 반듯할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역시나 열 맞춰 꽂혀 있거나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들을 본다면 결벽증이라며 고개를 저을까.
책장 아래쪽에 크기에 맞춰, 혹은 공간에 맞춰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며 또 웃다가,
문득, 궁금한 마음에 망설이면서도 하나하나 열어 확인해보기도 할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상자를 열고 닫다가,
내가 보관해 놓은 편지들과 영화표, 연극 티켓, 혹은 열차권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 멈칫 해줄까.
그때, 그 순간의 시간과 날짜가 찍힌, 낯설거나 익숙한 지명 속에 머물렀을 나를,
그때처럼, 여전히도 이렇게 소소한 것들을 모으고 간직한 나 때문에 조금은 아프기도 할까.
그러다가 손때가 잔뜩 묻어 너덜너덜하기까지한 노트를 찾아낸다면,
알아보기 힘든 글자라도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읽어보려 노력이나마 해줄까.
그 글자들 속에서 당신은 내가 감추려 애썼던 진심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말 했거나, 말하지 못했거나, 당신이 잊었거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나마 알아줄까.
나의 마지막 순간에 품을 유일한 바람대로 그래서 당신은 조금이나마 행복할까.
햇살 냄새가 묻어나는, 화사한 꽃무늬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서,
늘 내가 바라보며 잠들었던 당신, 혹은 나의 마음을 마주보며 고단한 몸을 잠시나마 쉬고 가준다면,
내게는 버거웠던 이 모든 것 내려놓고, 한점 바람처럼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을까.
당신이 깊고 혼곤한 잠에서 깼을 때 바람이 된 내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면,
그 바람결에 당신의 아픈 기억이 모두 지워지고 서늘한 그늘마저 사라지기를,
오직 당신에게 남는 것은 단 하나, 누군가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기억 뿐이기를.
여기가 어디인지,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조차 모두 잊고 그저 행복하게 돌아서기를,
당신을 사랑한 나조차 잊고 그저 행복하기를.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해도,
영원한 나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을 지켜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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