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우리의 열일곱 혹은 스물.

Betty1983 2015. 3. 30. 00:28

 

 

 

 

 

다시 미친 사랑에게     作 : 김왕노

 

미친 사랑이여. 네가 미쳐서 내게 올 때 피해버린 사랑이여.

난 미친 사랑을 위해 발밑에 밟히는 질경이 한 포기,

미친 사랑에게 걷어차이는 개 한 마리,

미친 사랑을 적시는 봄 비 한 번 된 적이 없다.

 

나는 몸뚱이가 긴 욕망의 아나콘다거나,

내 것을 아끼거나, 내 사랑에만 미쳐갔을 뿐,

내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아파했을 뿐,

내 신발에 지걱거리는 여름의 긴 장마를 원망 했을 뿐.

 

미친 사랑이여, 이제는 더 미칠 수도 없는 늙어버린 사랑이여.

치욕적, 치욕적이게도,

네 사랑이 미쳐갈 때 함께 미치지 못한 둔한 가슴,

네 사랑이 미쳐갈 때, 네 미친 손 잡아주지 못한 나의 손,

네 사랑이 미쳐갈 때,

미친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지 못한 나의 마음.

 

네 사랑이 미쳐서 날 뛸 때  나도 미쳐 날뛸까봐 경계하며,

네 영혼의 푸른 이파리 내게 닿을까 두려워했다.

네 삶의 그늘 속으로,

내 하루가 잠겨 들까 미친 사랑 멀리로 돌아다녔다. 비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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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시인컨데 나는 너를 내 마음에 담았고,

 넘치고, 또 넘쳐서 내 삶의 기저를 무너뜨릴 것만 같은 그 마음이 두려워 두 눈을 감고, 네게서 등을 돌렸다.

걸어가면, 두 눈을 질끈 감고 걷고 또 걷다보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사력(死力)을 다해 걸어온 그 거리만큼 이 몸은 그날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지언정,

마음껏 소리 내지도, 단칼에 잘라내지도 못한 내 마음은 뿌리를 내려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는 것을.

 

평소의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고, '시간 되면 보라.'던 너의 소소한 연락 몇 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화관에 앉아있던 나,

갑자기, '다들 같이 움직이기로 했는데 시간이 어떠냐.'는 너의 제안에 무리수를 두고 있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렇지 않은 척, 제 정신인 척, 그저 조용히 미쳐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련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아픔도 아닌 것.

다만, 너의 존재 자체가 이 삶의 일부분이라 애써 잘라낼 필요도, 무리하게 버릴 이유도 없는 것.

 

내 마음을, 혹은 서로의 마음을 죄다 태워버릴 것처럼 들끓던 그때의 우리, 혹은 내가,

너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길을 거두고, 네게 잡혀있던 남은 손마저 놓아버렸을 때,

내 마음을 재물 삼아 너에게 평온한 삶을 선사한 그 순간부터 이미 나는 미쳐버린 것일 테지만.

 

남들처럼 살기위해, 살게하기 위해 너를 보내고,

세상이 올바르다고 명명하는 삶의 궤도에 들어선 순간 미쳐버린 내 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네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길을 거두고, 네 손을 잡고있던 남은 손마저 놓아버린 뒤에야,

너의 존재가 내게 있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무엇임을 깨달았다면, 너는 그때처럼 나를 아프게 바라볼까.

 

나의 미친 사랑,

미친 사랑을 피해 멀리서 돌고 돌다 다시 네게로 돌아와도 이제 더는 돌아갈 곳 없으나,

나를 속이고 네게서 돌아섰던 그날만큼 치욕스럽고 비굴하겠는가.

 

이제는 어떤 것이 절실하지도, 그 무엇이 미치도록 간절하지도 않은 나이,

다만, 무던히, 어제도 오늘처럼, 오늘도 내일처럼, 평생을 하루처럼 너를 그리다 잠들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