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씻었다 作 : 강윤순
강가에 나가 귀를 씻었다 소라껍질 같은 귀가 강둑 위에 떨어졌다 귓속에서 기어나오는 긁히고 찢기고 퍼렇게 멍든 말들이 소나무 사이로 걸어든다 가지는 꺾이지 않았다 바람 따라서 흔들리기만 했다 바람은 내 귀로 들어와서 다시 나가고 있었다 귓속에서 솔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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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귀한 것을 지키고자 행했던 모든 일들이 나로 하여금, 되려 나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게 만들 때가 있다.
그 순간의 최선이라 믿었기에 기꺼이 소리가 되어 쏟아진 말들과, 마음을 따라 움직인 걸음들이 죄다 고단해지는 것이다.
치명적인 과오를 범한 것도, 나 스스로가 행한 일을 후회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줄곧 날이 선채 신경줄을 붙들고 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안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 있고, 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내가 있으니,
얄궂은 나의 예감이 적중한 것도, 모르는 것이 좋았을 것이나 모르고 넘어갈 수 없었던 사실들을 두 눈으로 목도한 것도,
그 사이에서 중(重)한 것을 지키려면 어떤 행동이든 취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던 나 자신도 분명 틀린 것은 아닌데.
나는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도대체 왜, 모든 것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스스로를 들볶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나 자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눈에 띄지 않을 딱 그만큼만, 그저 그렇게 살고자 했던 오랜 의지를 배반한 내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
세상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저 못본 척, 아무것도 모른 척, 들을 귀도, 말할 입도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내가,
나의 의지로 말하고, 망설임 없이 행동하며, 필요에 의해서 기어이 나를 드러냈다는 사실이, 나를 할퀴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고 듣게 되었던 명징한 사실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메아리처럼 내 안에 무수한 생각을 퍼뜨려서,
마치 난장판이 된 방안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처럼, 무슨 수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추슬러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무수한 소리로 꽉 차버린 귀를 털고, 숱한 말들로 헐어버린 입을 씻어, 찢기고 퍼렇게 멍든 말들을 모두 흘려 보내고 싶다.
단 하나, 당신을 지켰다는 절대적인 위안과 고요한 평온만이 솔향기 나는 바람으로 내 안에 깃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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