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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다이(多異)] 다른 만큼 특별한, 소소해서 귀중한.

Betty1983 2015. 12.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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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몇 년 전 즈음 책대여점이라는 것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적게는 몇 백 원에서 천원 안쪽에 한권의 책을 이틀간 빌려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한창 기울었던 집안형편이 일거에 나이진 때이기도 해서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하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덕분인지 책에 대한 내 소유욕을 실로 엄청났는데 학생이 가진 용돈으로 살 수 있는 책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어도 그 다음날이면 또 새로운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울적해했던 기억도 난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겠구나. 평생 나는 무지에 시달리다 죽겠구나.' 뭐 이런 되도 않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필독서라 해도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여태껏 보지 못한 문학전집도 꽤 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책대여점은 작은 천국이나 다름 없어서 하교길에 들르면 반 시간이상은 거뜬히 놀 수 있는 장소였고,

너무 넓지도, 지나치게 좁지도 않은 공간에 빼곡히 꽂혀 있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보면 환희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다.

책대여점은 문학전집, 혹은 순수문학만 인정하고 고집할 수도 있었던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준 공간이기도 해서,

그곳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 생에 다른 장르의 책을  접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새삼 고맙기도 하다.


실로 그때 접한 만화책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만화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나마도 책을 고를 때는 반드시 소설책 사이즈와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또 완결이난 작품을 읽는 것을 고집했으니,

(취향의 차이인데 작은 사이즈의 만화책은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정신이 산란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개중에 Let 다이(多異)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Let 다이(多異)는 완결을 애타게 기다렸던 책인 동시에, 완결을 기다리지 못하고 읽기 시작한 유일한 작품이었고,

(아마도 내 생에 유일무이하게) 소장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발품을 팔아가며 구했던 단 하나의 만화책일 것이다.

당시 책을 구하려던 시점에 이미 절판이었지만, 책대여점이 우수수 문을 닫던 시기와 맞물려 운 좋게 손에 넣었는데,

(평소 내 성향을 아시니 의아하게 여길만도 하지만) 이사에 불필요한 짐이라고 생각한 어른의 손을 거쳐 폐기되었다.

 

(아직까지는) 인터넷을 뒤지면 헌책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책의 상태를 장담할 수 없으니 선뜻 손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구한 것인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나에게 (상태가 완벽에 가까운) Let 다이(多異) 전권을 보내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파일로 된 짐승 용량의 Let 다이(多異)를 보내왔고 뒤이어 실물이 따라왔는데)

(대부분의 순간 그러하지만) 당신은 이 단순한 액션만으로 나로 하여금 정말 큰 웃음을 짓게 했음을 고백한다.

 

이메일에 점 하나도 안 찍어 보내고, 선물담은 상자에는 쪽지 한 장 없는 모양이 당신과 꼭 닮아있는 까닭이었는데,

사전 언질 없이 무조건 보내고 보는 나와 꼭 같기도, 엽서 한 장이라도 동봉하는 나와 다르기도 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무엇도 담지 않았으되 모든 것을 담았구나. 참으로 당신답구나. 그래서 내가 당신을 더 좋아하는구나.'싶었던 것.

 

막상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나지만,

당신의 말을 빌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나라는 사람을 당신이 꽤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물론 직접 들은바는 없지만 '알아서 알아먹겠거니'하는 당신의 스타일을 십분 존중(?)하여 알아서 확신하는 것이다.)

 

실상 나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 흔한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있다.

때로 놀랍도록 무심한 내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당신의 메시지에서 무엇보다 깊은 마음을 읽어내듯이,

 '삥 뜯을 게 많으니 아프지 말라.'는 말 따위를 걱정이랍시고 건네는 내게서 당신 또한 그 이상의 진심을 느끼리라는 것.   

 

그 언젠가 잠든 것처럼 평온한 삶이 시작된 그때,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내 세상에는 더 소중할 것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