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作 : 김경숙
묻고 싶었다 지하철 계단을 마악 내려오면서 문득 생각난 것처럼 이마를 짚으며 붉은 눈을 치켜뜨고 왜 사랑하는지 돌아가야 할 선명한 자리 갖추고 기다리는 보름달 같은 자궁 몸에 배인 아둔함을 가장하며 침이 마르고 가슴이 아련한가를 물어야 했다. |
네가 없어도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다만, 지금 보다 더 말수가 줄어들고, 귀찮은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갈수록 성가셔지겠지.
나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거고,
복사본처럼 똑같은 일상, 정해진 동선 외에는 그 어디로도 가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호기심을 갖지 않을 테니까.
네가 없어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거야.
더 열심히 일하고,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습관처럼 운동하면서 늘 그랬듯이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겠지.
나는 더 자주 혼자 영화를 보러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홀로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일쯤은 거뜬히 해낼 거야.
'혼자 먹기의 진수는 고기를 구워먹는 것.'이라던 네 말이 떠올라 '다음에는 고기를 먹자.' 생각하기도 할까.
네가 없어도 나는 절대로 울지 않을 거야.
단지, 좋을 것도, 기쁠 것도, 즐거울 일도 사라져서 진심으로 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잊게 되겠지.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을 거고,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오는 사람이 반갑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만나고, 말하고, 또 웃을 때도 있겠지. 물론,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겠지만.
나는 더 열심히 돈을 벌겠지만, 돈을 버는 이유는 단지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일 뿐,
그 돈으로 누군가와 맛있는 밥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보러가거나,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질지도 몰라.
물론, 나는 개의치 않고 차라리 편하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 그렇다한들 사는데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다만, 내 삶은 더 조용해지고, 끝도 없이 적요해지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을 거야.
그러다가, 끝내 그럴 것이었다가, 어느 날엔가 지하철 계단을 막 내려오다 붉은 눈을 치켜뜨고 멈춰서는 ,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그때, 진정으로 슬퍼해줄 단 한사람이 이제 더는 내 곁에 없음을 아파하게 될까.
몸에 배인 아둔함을 가장하며,
침이 마르고 가슴이 아련한 잠시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네가 내게 했던 말처럼 '잘 살겠지. 살기야 살겠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작위적일 만큼 태연하게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하게 될까.
네 삶의 어떤 순간에도 나를 떠올리지 않게 해달라고, 나를 잊게 해달라고, 너만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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