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면서 作 : 신양란
세상 살면서 어지간한 일로는 등 돌리고 살지 말라. 세상을 한 바퀴 온전히 돌아야만 비로소 그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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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 해도,
나는 이 삶에 그 어떤 얄궂은 순간이 와도 누군가를 보내거나, 혹은 내가 떠나야하는 상황을 맞닥트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내 사람이라면' 나 자신처럼, 아니, 나 자신 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과 내가 어떤 성질의 관계든 내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당신을 지키고 존중하며, 어떤 순간에도 당신의 입장에서, 당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배려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 안에는 당신에게 있어 내 존재의 의미가 무엇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엄청난 무모함이 담보로 걸려있기도 하다.
그것이 얼마나 유토피아적인 가치관인지 깨닫고 난 뒤에도 사람의 무게는 덜어지지 않아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마음을 쏟는 대신, 한계치에 다다르면 가차 없이 그 사람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던 듯하다.
그러다 누구 탓도 아닌 일에 지쳐 주저앉았고, 아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저 편안하고, 평안하기만을 바라왔다.
이제와 돌이켜 보건데,
내가 죽은 사람처럼 오직 평안만을 추구하게 된 까닭은 사람과의 부침 혹은, 그에 따른 아픔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마주하고, 보내야하는 그 당연한 순리가 내게 주는 고통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좋아지면 멀리로 달아나는 습관은 그 고통으로부터 기인하였고 이번에도 나는 도망갈 테지만,
그것은 당신을 보내야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명히 인식하는 까닭이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 한 지금의 나는 무엇도하지 않겠지만 15년 만에 찾아온 당신이라는 사람을 다만 좋아하겠다.
당신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무탈하기를 기원하면서 그저 가끔씩만 당신을 떠올리겠다.
당신이 가끔이라도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비록 허황된 것일지라도,
세상 한 바퀴를 온전히 돌아 내게 왔을 당신, 행복 하라. 어제 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더 행복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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