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지랄발광(止剌撥狂)] 이제, 그만 놓아둘 때.

Betty1983 2018. 3. 6. 10:40







사람은 저마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가장 나쁜 습관은 그 임계량을 부인한 나머지 한계점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으로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인데,

폐점통보가 있을 때가지  고수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와 (3일만에 해고되긴 했지만) 룸 카페 수습생활이 그러했다.


DVD를 보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셀프 바를 이용해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룸 카페에서는,

계산대를 보면서 고객 응대와 안내를 하고 청소담당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전체 매장관리를 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고객이 직접 원하는 방을 고르고 메뉴를 선택하면, 그 오더를 받고 안내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고객에게 맞는 방을 배정하고 매번 달라지는 셀프 바의 이용범위를 단시간에 숙지하여 설명하는 일이 혼란스러웠다.


(이용시간당 요금을 부과-담요대여, 영화용 USB 보증금, 프린트나 스캔비용, 약이나 충전기, 위생용품 차지는 별도다.)


간단한 음식 및 커피 같은 음료를 단품으로도 판매해서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직접 제조도 해야 하는데,

고객 앞에서 멘트가 미스나면 당황하게 되고, 그와중에 포스를 보면 바로 앞에 있는 버튼도 좀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다.

인터폰은 울리고, 추가 주문은 들어오고, 그 사이에 매장에 고객이 또 방문하고, 퇴실하는 고객의 계산처리 및 방청소까지,

 우선순위를 정한 뒤, 지시를 하고, 빠르게 움직여가며 매장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일을 소화하기가 참 버거웠다.


(차후에는 매장 청소아르바이트생을 직접 교육해야 해서) 첫 날은 전반적인 매장 청소 및 주방 집기 세척을 배웠고,

포스는 둘째 날에야 틈틈이 봐가며 청소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업무와 동시에 메뉴제조법을 배우는데 죄다 엉키는 느낌에,

계산이 가장 중요한데 자꾸 실수를 하니 지적받게 되고, 자연히 주눅이 들어 긴장하고 또 실수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런 지경이니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통보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서럽고 비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아무리 열심히 해도, 애써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 

계속 쌓이는 설거지를 하고, 끊임없이 청소기를 돌리며, 남이 쓴 화장실 바닥을 솔로 문지르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결국 해내지 못해서, (사장님 말씀으로는 '뭐가 어렵냐.'는) 포스기 조작을 빠르게 못해서 잘려나가는 게 자존심 상했다.

'내가 또 실패했구나, 내가 선택하고 손잡은 인연들은 죄다 틀어지고, 그 쉽다는 바리스타 시험도 떨어지고, 일도 잘리네.'


자학의 끝에서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고객 앞에서 밝게 웃고, 태연하게 청소를 하던 나는 CCTV가 없는 곳에 울었다.

(그날 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린데다, 억지로 먹은 식사는 얹혔고, 매장에 있던 개까지 나를 물어서 설움이 폭발했다.)

어쨌거나 마무리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하고 나왔으니 '3일동안 일한 정당한 대가만 받으면 되겠지'싶다.


본디 손에 쥔 것이 없는 사람이 무엇이라도 쥐어보겠다고 기를 쓴들 제것이 되겠냐마는,

일에 시달린 지난 몇 달, 한계에 부딪히고, 몸살을 앓을 정도로 아프게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면 미친걸까.

식은땀이 흐를지언정 주어진 일에 집중하면 되니까, 그 무엇이 떠오르거나 생각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편했던 것 같다.


외관만 멀쩡할 뿐,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달래려면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나 스스로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내가 선택하고, 제발로 걸어온 삶의 도로(道路)가 죄다 수렁이었대도, 설령 내 결정이 다 틀렸다 해도 그만 놓아두자.

이쯤이면 됐다. 제발 나 좀 봐주자. 이제라도 숨 좀 쉬고 살게. 십년 같은 몇 개월을 보낸 나를 다독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