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밥값' 그 의연하고도 처절한 무게.

Betty1983 2018. 3. 10. 16:23





밥값     作 :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내가 전생(前生) 잘못한 것이 많아 벌을 받으러 왔나보다.

 손에 쥔 것이 너무 많아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한 줄 모른 채 오로지 세상 위에 군림하며 안하무인으로 살다 왔나보다.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그 마음은 또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도 모르고 제멋대로 짓밟고 생채기를 내며 지냈나보다.

타인의 눈물을 하찮게 여기고, 그들의 아픔에 철저히 무심하면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살았나보다.


매순간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대신,

죄없는 다른 이만 탓하고, 눈앞에 닥친 위기만 모면하기 급급하면서 '내 잘못이 뭔데?'하늘에 대고 삿대질 했나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내 위에 신(神)조차 없는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굴면서 '만년인들 못 살겠느냐'코웃음 쳤었나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는 커녕,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는지도 모른 채, 허랑방탕하게 허송세월만 살았나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 이 무간지옥으로 돌아와,

내가 주었던 상처를 몇곱절로 돌려받으며, 단 한순간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잊지도 못한 채 두 눈 흡뜨고 사나보다.

생각과 생각사이에 익사한 채, 텅 빈 손에 무엇이라도 쥐어보려 평생을 발버둥치면서 겨우 숨만 붙이고 있나보다.

매일을 처음처럼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들여다보며 누구 하나 원망하지도 못하고 그저 '내 탓이구나' 되뇌나보다.


그래도 방탕한 자식을 염려한 부모들의 절절한 기도에 하늘이 감복해 차마 버리지는 못했나 보다.

잘못했다고 무수히 빌어도 닿지 않았던 것은 나의 과오가 너무 깊어 천형(天刑)이 끝나기는 아직 이른 까닭인가 보다.

아침에 출근하듯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 돌아올 수는 없다 해도 '지옥인데 이정도면  너그럽다.'감사해야 하나보다.

그래도 빌고 싶다. 무릎 꿇고 머리를 짓찧으며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잘못했다고, 이제 그만 멈춰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