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 살아야겠다 作 : 공광규 얼굴 표정과 걸친 옷이 제각각인 논산 영주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깔겨도 그냥 웃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짖지 않는다. 불륜 남녀가 놀러 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뿌리면 그것이 한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실기시험 준비를 다시하기로 마음먹고난 뒤 습관적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애쓰지 말자고, 그만 노력하자고, 실수한다 해도 끝날 때까지 놓지는 말자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건다.
은연중에 느끼는 압박,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떨어지는 순간 내가 자진해서 스스로에게 찍고 말 실패자라는 낙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길이 없는 악순환으로부터 애써 나를 떼어놓고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을 속살거린다.
(고민을 터놓고 싶으니)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지인과, 이제는 네가 이해해야 되는 나이라고 말하는 어른들과,
도저히 납득할 수는 없는 상황이겠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있으니 그만 화내고 양해 해달라'는 낯선 타인들에게,
'내 숨도 가쁜데 뭘 자꾸 들어 달래? 도대체 뭘 더 알아 달래? 왜 내가 이해해야하는데?' 라고 쏴붙이고 싶은 것을 누르며,
또 다시 애쓰고 노력하려는 나를 향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세상만사에 나를 걸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안쓰러운 나에게,
기어코 애를 쓰고, 기를 쓰다 망연히 주저앉는 나를 향해 '이만하면 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여야 함을,
그 어떤 하찮은 고민도, 아무리 쓰잘머리 없는 상념도, 좀처럼 끊어낼 길 없는 사념까지도 마땅히 인정해 줘야함을 안다.
나 스스로가 완벽하기는커녕, 미숙하기 짝이 없는 인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랄을 탑재하고 있으면 뭐 어떤가.
아무것도 안할 때조차 그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며,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다, 무언가를 붙들고 애를 써야 안심이 되는 숨 막히는 인간이면 안 되라는 법 있나.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없고, 바라는 것은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정당한 죽음이며, 사람에게 회의적인 인사인 나는 나쁜가.
지나간 사람의 마음 따위는 헤아리고 싶지도 않고, 설령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알고 싶지도 않은 나는 냉혈한인가.
'내게 상처준 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나는 극악무도한가. 정당한 것에 분노하는 나는 도(道)가 덜 닦인 인사인가.'
당신들이 나를 재단하겠다면 나는 기꺼이 잘려 나가주겠다.
딱 당신들이 보고자 하는 그만큼의 나로 존재하면서 웃어줄 수 있는 여유와 한심하게 살 수 있는 용기가 있으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일이 성에 차지 않아 못마땅해도 흔들려 주리라. 온힘을 다해 허허실실 한심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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