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이처럼 눈부신 나를 위한 찬가.

Betty1983 2018. 6. 11. 16:29








이방인     作 : 이훤


나를 가장 사랑하지 않았던 건 나였어요.


혹독히 몰아냈죠. 질타하고 배척하고

매일 나는

나의 바깥에 있었어요.


이방인이 되어 살았던 거예요

나에게.


밤마다 잊힌 국적을 되찾으러 가요.


말해줘요.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나는 나에게 가장 먼 경계였다고.


웃는 날이 많아질 것만 같아요.





알고있다.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들고 버티는 나는, 나의 절대적인 아군이자,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에게 좀처럼 너그럽지 못하고, 실수를 인정하되, 그 실수를 한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화(火)를 낸다.

 ('그 불길이 타인을 향하면 차라리 낫겠다.' 생각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다비공양처럼 스스로를 태워도 끝이 없다.)


나 혼자 세상 짐 다 짊어진 것처럼 청승 떨기 싫어서보다 침묵을 택한 것, 울 수는 없으니 차라리 웃었던 것,

'관심종자도 아니고 몸 좀 아픈 게 뭐 대수냐.'며 통증을 무작정 참고 넘겼던 것도 내게는 독약보다 더한 형벌이었을 거다.

아프다고 말하면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을까봐, 소리 내 말하면 무작정 주저앉아 울면서 누구라도 원망할까봐 입을 닫았다.

매순간 나의 자아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매번 나의 바깥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며 혹독하게 견뎌왔던 나는.


결국,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가장 먼 경계였다는 생각.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밀어내고 배척하며 좀처럼 마음에 차지 않는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 자신의 고향이면서, 더 없이 낯선 타향이었던 나는 스스로에게 이방인이 될지언정 나약해지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남들과 다를 수 있다. 선택의 순간마다 실수할 수 있다.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샤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이(내 기준에)나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고, 바보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 잘못이 되는 것이 정말 싫을 뿐.)


웃는 일이 많아질 것 같지는 않아도 조금만 내려놓자.

나는 여전한 어린아이, 혹은,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여자, 그 무엇이라도 찬연히 빛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자.

무엇하나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지만 단 한순간도 비겁하지 않았던 나를 기특하게 여기자. 나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