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당신이 건넨 위로.

Betty1983 2019. 4. 18. 17:35








안개가 짙은들     作 : 나태주


안개가 짙은들 산까지 지울 수야

어둠이 깊은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

안개워 어숨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사람에 관한한) 내가 하는 선택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강박이 시작된 순간부터,

나는 그 어떤 사람 앞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거나 적극적으로 사고(思考)하지 않고 방치하는 몹쓸 습관을 갖게 되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만났고, 그만 보자고 하면 일언반구도 없이 깔끔하게 돌아섰으며, 그 흔한 미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 아예 싫은 사람을 보지는 않았을 거고, 그에 따른 마음의 부침은 당연한 내 몫으로 남았을 것이다.)


좋다고, 만나 달라고 쫓아다니는 사람은 있었어도,

막상 연애가 시작되면 예뻐서 어쩔 줄 모르거나 손가락 끝까지 소름이 돋을 만큼 닭살 돋는 애정을 쏟는 이는 없었고,

드라이하고 담백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그들의 방식을 겪어내는 동안 마음이 다치고 싶지 않았던 나 역시 버석해져갔다.

그를 내 사람이라 칭해도(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면)그 사람의 일상을 궁금해하지도,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들어주거나 맞춰주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몰랐고,

설령 있다 해도 나의 바람이 그 사람의 스타일에 맞지 않아서 상충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레 모든 것을 포기했다.

부딪히고 싶지 않았고, 갈등하고 싶지 않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처받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 모든 것이 지겨웠으니까.

 (무엇보다, 내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내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서, 맞춘다고 해서 내가 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는 나의 배려가 점점 당연해졌을 것이고,

나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 사람이 정말 좋기는 한 것인지, 궁극적인 것들을 잊어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없었고, 진정으로 원한 적은 더 더욱 없었으며, 다만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

(버려지는 것도, 버리는 것도, 떠나는 것도, 그것을 힘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싫고 싫었을 뿐이었던 거다.)


그런 나를 향해서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당신은 계속 묻고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상대가 건네는 마음은 어떻게 받는 것인지, 그저 주기만 했던 내게 천천히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툴고,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울고 싶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다.


당신을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당신이 나를 원하는 것만큼 나 또한 당신을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이 정말 따뜻해서, 넘치게 다정해서, 이제는 무뎌질 대로 무뎌진 채 감정이 고장난 나를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이서,

사랑받게 해달라는 나의 절실한 기도를 신(神)이 들어주신 것도 같아서, 부드럽게 스며드는 당신에게 나는 기꺼이 젖는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쩌면 나는 진즉부터 사랑하게 해달라는 어리석은 간구 대신, 사랑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상대를 향한 마음을 막는 절대적인 문제도, 세상과 척을 져야할 정도의 난제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달달한 연애 사(史).

나도 이제는 남들이 누리는 것을 마땅히 누리면서, 당연하게 사랑받으면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환하게 웃고 싶다. 

설령 그것이 찰나일지라도 꽃은 피고 지고, 언젠가 때가 되면 또 다시 필 테니까. 그래, 괜찮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