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가슴속 그 영화

[사랑, 그 반복의 알레고리]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Betty1983 2011. 6. 23. 14:14

 

 

 

 

 

처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시민 게시판에 붙어 있던 포스터였다.

꿈꾸는 듯한 표정의 남자와, 그런 남자를 조금은 생뚱맞게 바라보는 여자.

적당히 떨어진 거리 사이에 부드럽게 흐르는 감정

그 간극을 메우고 있는 파스텔 핑크의 달콤한 색감과,

사랑을 향해 조용히,

하지만 명확하게 질문을 던지는 타이틀 롤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 연극이 막을 내리기 전에 꼭 보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날 유난히 뜨거웠던 태양과, 심술나도록 청명한 날씨 속에서,

그리고 포스터속의 명징한 물음 앞에서,

나는 그만 울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주 주말,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아간 길.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난 길치다. ^^;;)

중간에 '다른 공연을 볼걸 그랬나' 얄팍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극장 관계자분의 친절한 설명이 귓가에 맴돌아, 나는 그저 열심히 걸었던 것 같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길을 찾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짜증 보다,

사람의 힘이, 낯모르는 나에게 성심껏 설명을 해주던 그분의 참 마음이 뭉클 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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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쉽지 않게 찾아간 길,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공연을 기다리면서,

소극장 공연답지 않은 세심한 무대 장치에 나는 살짝 놀랐다.

산장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고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관객석에 있는 내가 그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느덧 조용히 시작된 공연.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소심하고 순수한 남자 용훈과,

첫사랑을 버리고 결혼 했으나 행복하지 않은 나연.

그런 그녀를 위해서 아내의 첫사랑을 남몰래 찾아온 남편 효섭.

(물론 효섭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이유로 그를 찾은 것이지만.)

그 세 사람의 어색한 만남과 고요한 대립, 그리고 부드럽지만 불꽃 같은 재회까지.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와, 

열정적으로 사랑 했지만 변해 버린 감정 앞에서 냉정히 돌아서는 또 한 남자.

결혼을 평생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변해버린 남편 곁에서 시들어가는 한 여자와,

뜻하지 않게 재회한 첫사랑 앞에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까지,

그들에게 몰입해 있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랑의 본질을 향해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이치에 따라 사랑 또한 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우리는, 첫 마음을 곱게 간직한 채, 그들을 추억하기도 하고,

스쳐지나간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또 지긋지긋한 사랑이라고 진저리를 내기도 하면서,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반복 되는 사랑의 알레고리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문득 울컥 했던가.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나는 내내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있었다.

 

한국적인의 정서에 빗대어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심한 디테일이 묻어나는 대본으로 차분하고 편안하게 풀어내신 작가님과,

 출중한 연기로(손동작 하나, 눈빛 한 번)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해 주신 배우님들께

조용한 박수와 마음 담긴 응원을 보낸다.

 

 

덧말 : 무대가 끝나고 손잡고 뛰어 나와 인사를 하는 대신,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의 모습을 한 채,

정중히 고개를 숙이시던 모습이, 그 공연 성격에 꼭 어울리는 피날레가 내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