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가슴속 그 영화

[겨울왕국] 엘사, 혹은 나와 당신의 이야기.

Betty1983 2014. 2. 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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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것이 당신과 나이거나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익명의 존재들일지라도,

나와 같은 사람도, 내 마음 같은 사람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걸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에도 드러낼 수 없는 외로움일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혹은 나의 이야기이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음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지닌 엘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목격한 뒤,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방안에' 자신을 가둔다.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힘, 그 달란트는 엘사 자신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그 무엇도 느끼지 않음으로써,

축복을 닮은 저주인지, 저주를 닮은 축복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자 애쓴다.

 

그러기 위해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안 되었고,

언제나, 늘 착하게 굴며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끝없는 노력을 반복한다.

 

 

마치 그것은 자신의 색깔을 감추기 위해 무수한 색들을 덧칠하다가,

결국은 새까만 색 밖에는 남지 않았던 한때의 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피폐해질 정도로 기를 쓰며 거듭 했던 연습은,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던 나의 에너지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일이었다.

실크 장갑속에 자신의 손을 감추고 기품 있는 미소를 짓고 있던 엘사처럼.

 

 

 

 

 

 

그렇게 가까스로 감추고, 숨기고, 억누르며 통제해온 엘사의 모든 에너지는,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공식화하는 대관식날 동생 안나와의 다툼으로 물거품이 된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언니 엘사가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침묵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하는 사이,

그녀의 동생 안나는 바깥 세상으로 나갈 그날을 꿈꾸며 외로운 시간을 견뎌왔던 것이다.

 

엘사가 침묵과 고립으로 외로움조차 외롭지 않게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했다면,

안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과 희망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덧칠했던 것이리라.

근원은 같았으되 방향은 달랐던 두 사람의 마음은,

켜켜이 쌓여 그들을 짓누르던 세월의 무게에 속수무책으로 어긋나고 만다.

 

 

내가 잘하고 싶었거나, 잘 지내고 싶었던 꽃같은 인연들이,

거짓말처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루 아침에 낙화(落花)하고 말았듯이.

껍데기만 남은 영혼으로 무의미한 물음을 반복하는 대신 침묵 속에 질식했던 것처럼.

 

 

 

 

 

 

자신의 일생을 걸어 지키고자 했던,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사력(死力)을 다했던 세상에 비친 자신의 얼굴.

그 슬픈 가면이 벗겨진 순간 자신의 실체를 온전히 인식한 엘사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그토록 자신이 지키고자  애써왔던 세상을 제 손으로 부숴버리고,

세상 그 누구도 오갈 수 없는 높디높은 산꼭대기에 자신만의 '얼음 왕국'을 짓는다.

 

차디찬 겨울왕국에서 외롭지만 자유롭다고 노래하는 엘사,

잊어버리라고,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아름다운 분노에 차 절규하는 엘사의 모습은,

언젠가의 내가 가차 없이 심연 속으로 던져버렸던 나의 진짜 얼굴과 닮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본연(本然)을 맞닥트린 엘사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선택은,

절대적으로  고립 되어 끝내는 완벽하게 고독해지는 것.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내가 철저히 혼자이면서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겨울왕국의 주인 엘사도 미처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저주라고 믿었던 자신의 능력, 세상을 얼려버린 그 손끝에서,

동생 안나의 친구였던 눈사람, 자신의 추억이기도 한 그 시간을 끄집어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잊겠다고 했으나 잊을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기억.

외롭지만 자유롭다고 외치던 엘사의 심연에 자리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얼려버릴 만큼 강렬했던 그녀의 분노는,

그 이상으로 깊었던 사람에 다한 그리움, 사랑의 다른 이름이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듯이.

잊었다고 믿어버렸던 순간에도,

실은 단 일초도 그대를 지운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픈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엘사는, 저를 데리러 왔다는 동생 안나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만다.

 그 분노는 동생의 심장을 서서히 얼려갔고, 

그제 서야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인건지 깨달은 그녀는 생에 가장 아픈 절망을 맛본다.

 

엘사가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 뒤로 숨어든 그 순간 ,

기다렸다는 듯, 날을 세우던 해묵은 분노.

그 분노는 결국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되어 그녀를 찔렀을 것이다.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걸어온 것은 아닐까.

셀 수 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저어했던 내 마음처럼.

 

 

 

 

 

 

자신의 손으로 얼려버린 자신의 왕국.

저 스스로 져버렸던 제 곁의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한 엘사가,

후회와 절망에 휩싸인 채 죽음의 위기에 직면 했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온힘을 다해 밀어냈으나 일생을 그리워했던 사람의 마음,

동생의 진심이 그녀를 지켜낸 것은.

 

그 순간 엘사의 두 볼을 적시던 뜨거운 눈물은 그녀가 찾던 정답이 아니었을까.

내게 절실히 필요 했던 것은 외로움을 동반한 자유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가슴이 맞닿아 만들어 내는 따스한 온기였다고.

 

나의 왕국에 휘몰아치는 매서운 눈보라를 잠재울 수 있는 힘은,

감정을 잘라내고, 마음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과 가슴으로 교감하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언젠가의 당신이 그랬듯이, 혹은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