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가슴속 그 영화

[청원] 죽음, 존엄한 삶 그 이상의 가치

Betty1983 2011. 11. 10. 02:13

 

 

 

 

부탁이 있어요. 날 죽게 해줘요.

 

 

안락사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알고,

주인공이 전신마비라는 것을 알고,

이튼이 한때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던 마술사라는 것을 인지했다 해도,

소피아가 건네주는 수프를 먹고, 읽어주는 책을 즐거이 듣고,

온전한 정신으로 라디오 진행까지 하던 그가,

이 말을 쏟는 순간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263

 

 

 

씩씩하게 모든 것을 이겨내던 사람.

수차례의 수술, 끊임없는 약물 투여, 투석기에 의지해야 하는 육체,

손가락 하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던 그가,

책을 쓰고, 전신마비 환자들을 위한 강연에 나섰던 그가,

누구보다 지옥 같을 삶에서 농담하는 여유를 잃지 않던 그가,

십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오며 바란 청원이 죽음이란 사실이 난 참 많이도 아팠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튼!! 여지껏 모든 걸 씩씩하게 이겨왔잖아!!

그래서 죽으려는 거예요!!

 

 

이 대화를 듣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무조건 이튼을 지지하기로 결심했던 건.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으니 죽을 수도 있겠구나.

치료를 거듭해도 쇠약해지는 몸만큼이나, 이제는 그전만큼 열심히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겠구나.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겠구나.

 

 

 

 

 

 

네가 이기면 난 자유지만 만약 진다면 난 종신형이야.

날 위해 싸워줘.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이튼의 결심을 알게 된 지인들이 그의 결의를 흔들며 만류할 때,

가정도 버리고 12년 동안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던 소피아가 그에게 냉랭한 모습을 보였을 때도,

존엄한 삶 앞에 죽겠다고 나서는 건 실없는 건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일생을 갈망 했고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자유.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 했으나 빛 한줄기 보이지 않았던 어둠의 터널.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최후의 카드가 죽음이었기 때문에,

살고자, 인간답게 살고자 선택한 죽음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그래도 살아야 되지 않아요'라는 말은 건네 볼 수가 없었다.

 

 

 

 

 

 

60초. 이튼 마스카레나스의 삶을 단 60초 체험하셨습니다.

 

 

지난하게 이어지던 법정 싸움.

그에게 최고 마술사의 호칭을 부여하고,

사지마비 환자인 그의 삶을 영웅적으로 추대하던 세상이,

대중을 기만한 거짓말쟁이, 삶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비겁자 취급을 했을 때,

간절하게 죽음을 청원하는 그를 매도하던 검사에게 제안 했던 마술.

 

좁디 좁은 괴짝 안에 갇혔던 검사는,

단 10초를 견디지 못하고 뚜껑이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정확히 60초가 지난 후에 밖으로 나온 검사가,

'숨도 쉴수가 없는데 이게 재미있는 마술이냐!' 항변 했을 때, 

그가 무표정하게 던졌던 이 한마디가, 나의 틀을 깨고 세상의 가치를 뒤엎었다.

 

그래. 누구라서 한 인간의 삶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삶이 자신의 몫이듯, 죽음 역시 자신의 몫.

존엄한 삶이 헌법의 기본권이라면 존엄한 죽음 또한 보장 받아 마땅할 권리다.

 

 

 

 

 

 

이렇게 행복한데 왜 죽으려하냐고 묻고 싶을 겁니다.

제가 지금 행복한 건, 나의 고통이 어제로 끝났기 때문이죠.

 

 

법정 싸움에서는 패소 했지만,

오직 이튼을 행복만을 바라는 소피아의 도움으로,

생의 고별 파티를 맞이 한 밤.

어느 때 보다도 유쾌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친구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건네던 그가 남겼던 마지막 멘트.

 

그래. 죽음이 불행하다고 누가 단정했던가.

죄 많은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들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치열한 인간의 삶이 귀중한 것 이상으로,

그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수프도 약도 들지 않은 손으로, 오직 내 아내로써 걸어와요.

그 열두 걸음이 당신의 12년 사랑 이예요.

 

아픈 몸을 이유로 오랜 시간 모른 척 해왔던 자신의 사랑.

소피아가 난폭한 전남편에게 끌려갈 때,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침대 위에서 울부짖었던 이튼이,

생의 마지막 날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고,

더 없이 감격스럽고 벅찬 얼굴로 조심스레 건네주던 마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는 불행 했으나 불행하지 않았다고.

사랑 받고 사랑을 주며,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떠날 수 있었으니까.

 

 

 

 

 

 

인생은 짧지만 열심히 살면 길어져요.

그러니 틀을 깨세요. 빨리 용서하고 많이 사랑하고

즐거웠다면 후회하지 마세요.

 

 

그래. 후회하지 말자.

지나온 시간의 애틋함도, 어쩔 수 없는 삶의 부박함도,

그속에서 찾아오는 보석 같은 기쁨마저도 모두 나의 몫.

나 역시 이튼처럼

열심히 살다 행복하게 떠나는 사람이 되리라.

 

 

덧말 : 이 영화의 리뷰를 쓰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주제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쉬이 적혀지지 않아서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