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풍문으로만 접했던 영화가 반짝 재개봉 했다는 소식을 안 오늘,
나를 영화관으로 이끈 것은, 지난 시절 너의 말 한마디였다.
'언젠가 너에게도 화양연화처럼 뜨거운 사랑이 찾아올 거야.'
한낮의 나른한 햇살이 묻어나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작게 웃었지만,
그 웃음 뒤로 삼킨 마음 한 조각이 참 많이도 쓰렸다.
그 시절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 그대.
나의 전부를 가질 수 있었으되 무엇도 소유하지 않았고,
나의 전부를 가졌으되 끝내 모두를 지켜주었던 그대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남자: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알고 싶었어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죠.
시작은 낯선 옆집 남자, 어색한 이웃집 여자에 불과했던 그들이,
서로의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고, 끝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우자의 불륜이라는 공통분모를 감안하고 본다 하더라도)
실상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그때 그 자리, 그 시간에 마주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대사다.
하여 나 또한, '나한테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묻던 그때의 그대를 향해 답한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도 모르고, 알 수도 없는 나라서,
가늠할 수 없는 그 이유 때문에 그만 멈추고 싶을 만큼 두렵고 두려웠어도,
"너를 사랑하는 것, 두려워도 도망가지 않는 것,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내 생의 처음도 마지막도 끝내 너인 것이라고.
남자: 부탁이 있어요.
여자: 뭔데요?
남자: 미리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여자: 좋아요.
여자: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요.
남자: 왜요?
여자: 희망도 없는데......
남자: 알았어요. 당신 남편 잘 지켜요.
여자: (오열한다.)
남자: 울지 말아요. 연습인데.
서로의 배우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던 그때,
그들이 서로를 온전히 가슴속에 담은 그 순간,
세상의 구설에 휘말리는 여자를 지켜주고 싶었던 남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조금씩 깨어날 준비를 시작한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사랑의 번연한 변명 앞에 언제나 조소를 흘리는 나라도,
남자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그만 함께 울고 싶어졌다.
'내게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랑의 그림자일지라도,
'저들은 헤어지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랑의 아이러니.
그때 너를 사랑하면서도 네게서 달아나고자 했던 나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자: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여자: 나예요.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여자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후, 끝까지 그녀를 기다리다가 떠난 남자.
마지막 순간 그를 향해 달려가지만 끝내 늦고 말았던 여자가,
그가 있는 곳을 수소문한 뒤, 그와 같은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은(서로를 위해)끝내 조우하지 않았어도,
몇 년이 지난 뒤까지 고요한 뜨거움으로 서로를 그리워한다.
(전에 살던 집에 다시 세 드는 여자&부러 그 집에 찾아가고도 그녀를 만나지 않고 돌아서는 남자.)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이별했어도 이별한 것이 아니고, 볼 수 없어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여전히 그대를 향해 환히 밝혀진 내 마음처럼.
남자: 모르죠? 옛날에는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에 구멍을 파고는
거기에 자기 비밀을 속삭인 뒤 진흙으로 봉했다고 해요.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서......
사랑하고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했을 남자는,
오래된 사원, 낡디 낡은 구멍 속에,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래되고 헤질 자신의 비밀을 속살거린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그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나,
자신의 숨이 다한 뒤에라도 바래지지 않을 자신의 마음을 묻는다.
이 생(生) 전부를 걸어 그대를 사랑하고야말 내 마음을 끝내 꼭꼭 여며 감춰놓은 것처럼.
나는 여전히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 같은 건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한다.
그 시절 나의 떠남은 그대를 너무 깊이 마음에 두었던 까닭이요.
그 순간 그대의 작별은 우리의 인연이 다했던 것뿐이라고..
그러니 나를 떠난 화양연화(花樣年華)그대, 부디 행복하기를. 세상 어디서든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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