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가슴속 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사랑, 가슴에 뚫리는 단 하나의 구멍.

Betty1983 2014. 7. 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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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나는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왜 이리 안 되는 것이 많은지, 어째서 금지된 것들이 더욱 아름다운지,

왜 내가 원하고 소망하는 것들은 머물지 못하고 아프게 사라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떠나간 것들을 끊임없이 그리워해야만 하는지.

 

이 난제는 내 생(生)의 여전한 수수깨끼인 까닭으로 어리석은 이 마음 늘 춥고 외로웠어도.

 

나는 도돌이표를 찍는 악보처럼 묻고 또 되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은 여전히 아름답고, 나의 소망은 시그러들지 않았으며,

무슨 까닭인지 이 징글맞고도 눈부신 생(生)은 계속되고 있지 않느냐고.

 

이 지난한 삶의 답이 사랑이라면,

이 고된 한세상 어떻게든 버텨볼만 하지 않겠느냐고.

 

 

 

 

 

 

사랑엔 성별이 없지.

누구든 찾아봐.사랑하면 그만, 행복하면 다이지.

진실된 사랑이면 내일 죽는다한들 뭐 어때?

 

순수미술을 전공하며 자신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이름을 알리는 것이 꿈인 엠마는,

애인이 있음에도 주말이면 게이바에 출입하며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한다.

 

남자&여자와 모두 관계를 가져봤지만 자기 취향은 확실히 여자쪽이라고 못 박을 만큼,

정체성이 확실한 그녀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에 목마르지 않았을까.

그녀의 파란 머리색을 닮은 냉정과 무심속에 들끓는 미지의 누군가를 향한 열정이,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던 아델을 향해 단박에, 서서히 깨어나기 전까지는.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다는 건 뭘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길에서 스칠 때, 우연히 부딪힌 사람과 저절로 시선이 오갈 때,

한눈에 반했을 때처럼. 가슴엔 뭔가 보태질까, 빠질까.

 

문학 전공생답게 여리디 여린 감성을 지닌 소녀 아델.

생에 첫 데이트를 목전에 두고 길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엠마에게 눈과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감정인지 명확히 알 리 없는 아델은 애써 태연하게 데이트를 즐기지만,

남자와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나누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며 오열한다.

 

"내가 가짜 같아."

 

괴로운 표정, 초췌한 몰골로 한참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아델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내내 나는 속삭였다.

'괜찮아. 너는 다른 것일 뿐, 틀린 게 아니야. 너 자신을 믿어도 좋아.'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흑백논리, 혹은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너를 끼워 맞추려 애쓰지 말라고.'

 

 

 

 

 

 

   엠마 : 여기 왜, 혼자 왔어?

   아델 : 그게...... 우연히요.

   엠마 : 그렇군......

            우연이란 없어.

   아델 : 그런가요?

   엠마 : 응.

 

   (중략)

 

   아델 : 순수미술이라면 추한미술도 있나요?

   엠마 : 추한미술은 없지만...... 추해 보일 순 있지. 미술은 주관적이라.

            장식미술, 응용미술등 과를 구분하는 명칭인데 추한미술과는 없어.

   아델 : 왜죠?

   엠마 : 좋은 질문이야.

            가령 인상주의 화가들은 당대의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모두 쫓겨났고,

            그래서 자신들의 추한미술을 보여줄 추한 미술관으로 모여들었는데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걸작들이 나왔지.

 

   이 짧은 대화를 듣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결론을 지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델은 미술이나 철학쪽에 지식이 전무한 편인데도 엠마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

   '이 아이들은 우연이 아니구나. 운명이구나. 사랑하겠구나. 사랑하고 말겠구나.'

 

   그리고 이왕하는 사랑이라면

   당대의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쫓겨난 화가들이 그들만의 미술관에서 최고의 걸작을 전시했듯이,

   그렇게 인생 최고의 사랑을 하기를, 끝내 이별하더라도, 하여 아파하더라도 끝내 사랑하기를 바랬다.

 

   '저런 사랑이 세상에 있을 수가 있는 거야?'라고 되물으면서도 경탄을 금할 수없는,

   '추하다, 역겹다, 토할 것 같다.' 이렇게 단편적이고 편파적인 단어들로는 감히 단언할 수없을 만큼,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벽에 걸린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엠마와 아델이 함께하는 순간,

   그 시간들 속에는 그 흔한 사랑의 밀어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같이 웃고, 흥겹게 춤추며, 뜨겁게 입맞춤 할 뿐.

   여느 남녀 커플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족에게 자신의 연인을 소개하고,

   그 어느 커플 보다 격렬하게 서로를 안고, 원하고, 바라며, 끊임없이 갈구한다.

 

   우리나라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만큼,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던 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입을 맞출 때면 늘 눈을 감고 있던 엠마와 처음처럼 발그레해지곤 하던 아델의 얼굴 때문이기도,

   욕망으로 점철 되어 이성을 초월한 순간에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던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 빠져들게 되면, 그 사람의 단점마저도 아무래도 좋은 순간이 오는 것처럼,

   어느새 두 사람에게 동화된 나는 '스토리고 설득이고 둘이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바보 같게도, 나 역시 이들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것.

 

 

 

 

 

 

   엠마 : 너도 정말 좋아하는 걸 해야지.

   아델 : 일이 있잖아.

   엠마 : 알아. 그 뜻이 아니라 글을 잘 쓰잖아.

             뭔가 써보는 건 어때?

   아델 : 나를 위해서만 써와서......

   엠마 : 재능을 썩히는 건 아까워.

   아델 : 나의 경험을 쓰는 건데 널리 공개하긴 싫어.

   엠마 : 공개가 아니라 창작을해.

   아델 : 방법을 몰라.

   엠마 : 이야기 지어서 애들 잘 들려주잖아. 그걸 즐기고.

   아델 : 애들이니까 하지 스토리 구상에 소질 없어.

   엠마 : 그래, 네 선택이지.

             난 그저...... 너도 뭔가 이뤘으면 좋겠어서.

   아델 : 뭘.

   엠마 : 글쎄, 자아실현 말이야.

   아델 : 난 만족해.

   엠마 : 날 위해 요리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아델 : 난 행복해. 이렇게 너랑 있는 게 내 행복의 방식이야.

   엠마 : 그렇다면야 뭐.

   아델 : 강요하면 나 상처 입어.

   엠마 : 강요가 아니야.

   아델 : 그런 느낌이야.

 

   같은 향기를 지녔고 서로의 영혼은 통했을지언정,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던 엠마와 아델 사이에는 미묘한 벽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운 창작(미술)의 세계에 빠져살며 자신의 성공을 일구는 것으로 자아를 찾는 엠마와,

   반복적이지만 안정적인 일(교사)을 직업 삼아 엠마의 곁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아델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다.

 

   엠마가 자신의 집을 갤러리 삼아 첫 전시회를 열던 날,

   자신의 연인을 위해 손수 요리를 하고 세상 누구보다 눈부신 모습으로 손님을 맞지만,

   (엠마가 '나의 영원한 뮤즈이자 오늘 날 내 행복의 근원인 아델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고 공개 고백을 해도.)

   그들이 논하는 화제속으로 섞여들 수없는 아델은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웃자고 한 마디 덧붙인다면 엠마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나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자신(아델)은 언제나, 항상 여기 이 자리에서 연인(엠마)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자꾸만 제 손이 닿을 수없는 먼 곳으로 걸어가는 느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머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큰 괴리가 있는 것처럼,

   아델은 공허하고도 불안한 시선으로 다른 이들과 웃고 떠드는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한) 자신의 연인을 좇는다.

 

   폭풍전야의 고요같은 일상, 평화롭지만 위태로운 그들의 하루하루는 야속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델 : 맹세해. 고의가 아니었어.

   엠마 : 넌 걸레야. 창녀 같이 내줬다 이거야? 너도 좋았지? 그놈 거 빨고서 어떻게 나랑 감히 키스를!

            게다가 날 만지고 쳐다봐? 그게 네 방식이니? 거짓말에 헛소리나 하고!

   아델 : 미안해.

   엠마 : 넌 걸레야.

   아델 : 어떻게하면 용서해 줄래?

   엠마 : 용서란 없어. 다신 네 꼴도 보기 싫어. 짐 싸서 나가! 내 삶에서 나가!!

   아델 : 아무것도 아니었어.

   엠마 : 또 바보 취급이니?

   아델 : 너없이 어쩌라고!!

   엠마 : 그놈한테 가!!

   아델 :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해. 못가! 너없이 어떻게 살라고!!

   엠마 : 어서가! 꺼져버려!!

 

   중요한 프로젝트(작품 전시)를 앞두고 공동 작업을 하며(집에서 전시회를 열던 날 다정한 모습으로 외로움을 증폭시킨)

   리즈(화가이자 엠마의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엠마 때문에 외로움이 극에 달한 아델은

   결국 동료교사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마는데(한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거짓말로 무마하려다 외려 일을 키운다.

 

   이미 제 연인(아델)의 동선을 파악한 엠마가 사실여부를 묻는데도 당황한 나머지 진실을 터놓지 못하던 그녀의 모습은,

   엠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델의 심정 역시 십분 공감 되어 엠마가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싶었으니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렵다.)

 

   '다른 건 몰라도 성별 불문하고 바람만은 봐넘길 수 없다.'고 단언하는 나조차도,

   '이번 한 번만 눈감고 넘어가주면 안 되나. 일부러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비는데 좀 봐주면 안 되나.'싶었다.

   (날 것 그대로의 대사를 옮기는 것에 망설임이 짙었으나 두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아델에게 한눈에 반한 뒤 2년을 만나던 연인까지 정리하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던 엠마는,

   아델을 선택했을 때처럼, 뜨겁게 그녀를 안았던 그날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던 것처럼,

   단숨에, 단 한순간에 자신의 사랑과 마음을 제 삶의 바깥으로 내던져버린다.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아델의 모습과,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으면서도 한순간에 그 모두를 져버리는 엠마의 모습은 나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아델 : 네가 그리워. 널 만지고 싶어.

            서로 바라보고 숨소리를 듣고 싶어. 널 원해. 끊임없이. 너 밖에 없어.

            만지게 해줘. 원하잖아. 부인하지마. 너도 그리워하는 거 알아.

 

   (엠마를 끌어당겨 격렬하게 키스한다.)

 

   엠마 :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지마...... 안돼.

   아델 : (눈물을 흘리며 횡설수설) 미안해.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통제가 안돼.

   엠마: 괜찮아.

   아델 : 다시는 못 보는 거야?

   엠마 :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래.

   아델 : (울먹이며) 날 용서 안했어?

   엠마 : 용서했어.

   아델 : (망설이면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긍정의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엠마)

 

   아델 : (다시 쏟아지는 눈물) 정말이야?

   엠마 : 딴 사람이 있어. 너도 알잖아.

             하지만 너에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영원히 그럴거야. 평생동안.

   아델 : 미안해. 나 이런 거 알지? 이유없이 우는 거.

   엠마 : (옅게 미소지으며) 내가 널 모를 리 없지.

   아델 : 매번 이래. 정말 앞으로 귀찮게 안할게.

   엠마 : 귀찮은 적 없어.

 

   (둘다 눈물을 쏟으며 뜨거운 포웅을 나누고 헤어진다.)

 

   대부분의 우리네들이 이별 후에 그러한 것처럼 사랑에 빠진 것 못지 않게 후유증을 앓던 아델은,

   (수업중에 갑자기 운다,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에서 잠든다, 멍하니 바닷가를 바라보다가 물속으로 뛰어든다 등등)

   열병이 지나간 자리에서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는 사랑의 얼굴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엠마를 찾지만.

 

   동료화가(리즈)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엠마의 모습에 다시금 절망한다.

   (자신을 원하는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끝까지 욕망을 누르는 엠마의 행동이 이를 대변한다.)

 

   사랑하지 않으니 안을 수는 없지만 '영원히 애틋할 거라는' 엠마의 고백 아닌 고백은,

   한시절의 우리, 혹은 내가 관통해온 자리, 영원히 구멍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날들을 불러왔다.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나 나조차도 성가셔하는 내가 단 한 번도 귀찮아한 적이 없는 생(生)의 단 한 순간.

  시간이 흘러 기억은 퇴색되고, 나는 쇠락할지라도 영원히 애틋할 '당신'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갔으나,

그 무엇도 지나가지 않은 이 자리에서 나는 작은 위로를 받는다.

 

당신과 나 함께할 수는 없었으되, 한때의 우리는 이처럼 아름답지 않았느냐고,

누군가가 머물렀다는 이유로 내 가슴에 뚫린 구멍들이,

위태로운 이 삶을 지탱해 준다는 것을 그때의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우리가 손잡고 걸었던  어느 한 계절.

사금파리 같은 햇살 아래서'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한 소녀가,

이렇게 살아남아 당신을 되새기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