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표지판 作 : 윤용순
나를 따라온 세월이 아직도 남아서 어느 모퉁이 좁은 길을 돌아가고 있는가.
모퉁이 길을 돌아서 내려가는 나의 뒷모습을 방범등 불빛이 비춰 온다.
낯익은 얼굴들은 보이지가 않고 녹이 슨 교통안전 표지판 화살표만이 비탈진 내리막길의 내 나이를 가리키고 있다.
|
언젠가부터 아버지, 아빠와 식사를 할 기회가 생길 때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밥 값을 무조건 내가 먼저 치루는 습관이 생겼다.
부녀지간, 아빠와 딸 사이에 밥 한 끼 누가 사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누가 알려준 것도, 그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날 동안 아빠랑 몇 번이나 더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가령, 내가 지금부터 30년 동안 밥을 산다고 해도
(매일 외식하는 것도 아니니) 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일 텐데,
앞으로 살날보다 이미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그분을 앞에 두고,
무수한 생각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 '저녁 먹을래?' 물어 오실 때마다,
'살 빼야 돼. 살찌잖아.' 되도 않는 이유를 들어가며 거절한 것이 죄송스러워서,
예전에는 고봉으로 드시던 밥을 반공기도 못 드시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서,
나는 자꾸만 아버지, 아빠에게 '딸이 저녁 살까?' 되묻곤 한다.
맛없는 음식 앞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은근히 깔끔한 미식가에 속하는 분이지만,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딸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주시는 것인지)
나와 식사를 할 때 고르는 메뉴는 죽이나 부침개, 혹은 닭도리탕에 한정된다.
하지만 정답이 정해진 메뉴를 먹더라도 아빠와 나의 고민은 깊으니,
북적대는 광장시장 통로를 거닐며 어디서 먹을까 고심하는 시간이 긴 편이다.
(결국은 전에 갔던 가게로 가서 앉게 된다는 함정(?)도 있다.)
그 사이 아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소소하고 시시하기까지 한 물음을 던지고,
ex) '이 생선 이름은 뭐야? 여기는 매운탕 밖에 안 팔아?' 등등
여기는 뭐 파는 골목, 저기는 또 뭐 파는 골목이라는 아빠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기도 한다.
여기서 나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 되는데,
길치인 관계로 다음번에 방문 했을 경우 같은 설명을 다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의 이야기는 내게 늘 신세계다.)
아는 것보다 훨씬 적게 말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익숙한 아버지.
내색하는 것보다 속으로 삭이는 것이 더 많은 아빠.
그분이 소리 내어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적지 않은 안도를 느끼는 것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사라지고 녹이 슨 교통안전 표지판의 화살표만이
청춘을 지나 황혼에 접어든 그분의 나이를 가리켜도,
이제야 당신을 헤아리는 어리석은 나라도, 이제 서야 당신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나를 위해.
아직은 내곁에 있어주실 것 같아서. 아주 오래도록 그래주실 것도 같아서.
'Betty's Review > 시(詩)의속삭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詩)가 말을 걸다] 사월(四月)의 세레나데. (0) | 2014.04.01 |
---|---|
[시(詩)가 말을 걸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0) | 2014.03.13 |
[시(詩)가 말을 걸다] 마음, 그 우아한 지랄병. (0) | 2014.02.18 |
[시(詩)가 말을 걸다] 뒤 늦은 고백, 조금은 부끄러운. (0) | 2014.01.28 |
[시(詩)가 말을 걸다] 나 항상 그대를. (0) | 2014.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