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 作 : 나영애
오늘도 태양계는 고도의 지혜에 따라 정해진 궤도를 돈다.
조심하라. 조금만 더 다가서면 타버리고 조금만 멀어져도 얼어붙을 것이다.
그대와 나의 거리 또한. |
언젠가 누군가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던 그때 나는 습관적으로 지갑을 잃어버리곤 했다.
무슨 정신인지, 대체 어디다 마음을 쏟고 있었던 건지,
누군가가 들어 있는 그 지갑은 수시로 내 손에서 분실 되어 내 마음을 까마득하게 만들었다.
워낙 자주 잃어비리는 통에 놀라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누군가의 사진 한장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까 애를 태웠었다.
신기하게도 그 지갑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로 다시 돌아왔지만.
다시 돌아오기가 바쁘게, 나는 또 다시 낯선 곳에 지갑을 두고 나오거나,
혹은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버리곤 했다.
제 아무리 조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해도 어느 순간이면 지갑은 내 손에서 사라졌고,
그 지갑을 온전히 분실하고 난 뒤에야 나는 더 이상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그제 서야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마음을 쏟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는 사실을.
내가 진심으로 사랑 했거나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무엇은 ,
내게서 너무 멀리 있거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져버린 것들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그 후로 오랫동안,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끼거나 마음을 쏟게 되면,
나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기를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무게는 늘 이성을 배반하고 균형을 깨뜨린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지금 내 발로 걸어간 뜨거운 태양계 근처를 맴돌며 되묻고 있다.
너를 똑바로 바라보고 선채로 점점 눈이 멀어갈 것인지,
아니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게서 멀어진 채 이 마음을 얼릴 것인지.
내 생에 단 한 번 너의 영혼을 마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는동안 다시는 너를 볼 수 없는 깜깜한 어둠속에 살아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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