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못 하나가 차도 위를 구르고 있다. 당신의 아버지는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그 차도를 향해 차를 몬다. 못에 찔린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갈아 끼우느라 그는 기차를 놓친다. 그는 다음 기차를 타고 어느 열차 칸에 자리잡는다.
"신사숙녀 여러분, 차표를 검사하겠습니다."
아뿔사, 그는 급히 서두르느라 개찰하는 걸 깜빡 잊었다. 다행히 검표원은 그날따라 기분이 아주 좋다. 그래서 그에게 일등석에 자리가 남아 있으니 거기에 가는 게 어떻겠냐며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당신의 어머니가 된 여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미소와 친근한 대화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는다. 아홉 달 후 당신이 태어난다.
당신이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겪게 되는 그 무수한 일들은 그날 아침 3센티미터의 녹슨 못이 정확히 그 장소에 놓여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우연. 우리의 존재를 쥐고 뒤흔드는 건 바로 그것이다. 녹슨 못 하나, 잘못 조여진 나사 하나, 시간이 맞지 않는 손목시계, 연착된 기차, 검표원의 예기치 않은 친절 따위.
-기욤 뮈소 : 구해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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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나는 운명을 믿었지만,
(아니, 그때의 누군가가 운명을 믿는다기에 무작정 믿기로 마음먹었지만 ) 지금은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세상 그 무엇도 내게 있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말이 정답이 될 것이다.
'운명은 개뿔'이라고 거침없이 비웃는 이런 나라도,
우리가 우연이라고 칭하는 우연들이 그저 딘순한 우연만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심히 보게 된 예능프로에서 화면에 비치는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찾게 됐던 것,
넘쳐나는 글들과 무수한 동영상들 사이에서 당신의 손을 거친 무언가가 나를 웃게 만들었던 것.
호기심으로 찾은 당신 방에서 망설이던 것도 잠시, 낯선 공간에 기꺼이 나의 흔적을 남겼던 것.
그것이 시작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알게 되고, 당신과 이때껏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
나는 그날 그 시간에 다른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을 수도 있었으며 (실제로 발을 빼야할 것 같은 느낌에 한참을 주저했었다.)
당신이 내 시선을 붙들었더라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 그렇구나.'하며 그저 지나쳤다면 그뿐이었다.
설령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마침내 서로를 알게 되었다 해도 그 과정에서 어긋날 소지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지만 당신이란 사람을 보고 겪을수록 내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은 기적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게 우습고 만만하게 보이는 일을 좀처럼 용납하지 못하는 내가,
나사가 하나쯤 빠진 것만 같은, 맹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을 당신에게 자주 들키면서 그저 편안할 수 있는 것도,
종종, '모지리' 혹은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애'라는 놀림을 받아도 정말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내게는 좀처럼 흔하지 않은 우연이자,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필연이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당신이 무엇도 알지 못한 채, 바래져가는 시간 속에 모든 것이 묻혀 진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다.
무수한 우연의 반복, 그 끝에 존재했던 당신이라는 사람을 내가 참 많이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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