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백 년을 살 수 있다면.

Betty1983 2017. 4. 10. 23:15








백 년    作 : 이병률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삼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엔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이제 더는 누구도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때껏 내곁에 있던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일을  더는 견디고 싶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이 들고 날 때마다 휘청이던 내 영혼이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는 까닭이다.


누군가가 나를 놓아버리거나, 혹은, 내가 누군가를 놓는 것이라 해도 그 아픔은 동일한 것.

다만, 먼저 돌아선 이는 내가 어떠한지 알 리도 없고, 찾지도 않을 것이니 남은 것은 오롯한 내 몫이라 다행이다.

눈도 뜨지 못할 만큼의 두통에 시달리거나, 겁이날 정도로 하혈을 하거나, 밥 한끼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도,

설령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생겨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으리라는 사실이 슬프고도 감사하다.


 당신 덕분에 살고 싶었다고, 행여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욕심낼까 모질게 굴었다는 고백은 갈 곳을 잃었지만,

당신은 끝내 이 마음을 모를 것이라, 늘 그래왔듯 이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아둔 채, 덮어두면 충분할 것이니.

당신이 내게 보인 모두가 거짓이었고, 작별의 말조차 수월히 돌아서기 위한 임기웅변이었대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옳았고, 마땅히 그러해야 했던 일이라 잘 지내라는 인사 밖에는 할 수가 없었으니까.

옳거나 혹은 그르다 해도, 그 뒤에 무엇이 와도 감당하겠노라 마음 먹고 잡은 손이었으니 지금의 눈물은 내 몫이다.

다만, 내 곁에 머물던 누군가가 떠나는, 만나고 헤어지고, 살고 죽는 그 당연한 이치가 새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내게서 가져간 사람에 대한 희망, 그리고 살아보고자 했던 욕망은 기꺼이 내어줄 수 있지만,

(혹자들은 비웃을지라도) 누군가 다시 나를 떠나면,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나를 숙연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보처럼 안도하는 까닭은, 당신은 다치지 않았고, 이 모두는 내 몫이라는 사실 덕분이니,

당신의 마음 편하도록 보내줄 수 있어서, 그렇게 당신이 나를 가벼이 털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