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Review/시(詩)의속삭임

[시(詩)가 말을 걸다] 내안의 폐허에 닿아.

Betty1983 2018. 1. 7. 03:46








종로일가    作 : 황인찬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보았다.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도, 너에게 화를 내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영혼 없이 일생을 살아도, 내가 기다려마지 않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 해도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내 진심을 철저히 이용하고, 완벽하게 기만한 뒤, 본인이 목적한 바를 챙겨서 떠난 당신에게 무엇도 남기고 싶지 않다.


'네 말이 다 맞다고, 내가 또 네 마음을 상하게 했다'며 반성을 해도 결국 동일한 과오를 일삼는 너와,

거짓으로 중무장하고 진심인 척, 적당한 때 깔끔하게 떠나는 게 목적이었으면서 사랑을 운운한 당신도 역겹기 그지 없다.

(고작 이런 이들 곁에서 평생을 머물고자 했다니. 이 인사들을 지키겠다고 스스로 만신창이가 되었다니 등신이 아닌가.)


너를 만난 열일곱 이후부터, '네가 나를 뭐라 지칭하든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주겠다'고 결심한 내가,

당신의 손을 잡은 순간부터 '이 선택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한심할 뿐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깊이 괴이는지 짐작도 못할 너에게, 내 진심을 받고도 그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고, 인생을 걸고, 어떻게든 지켜보겠노라 사력을 다했던 나는 '그저 눈 뜬 봉사였구나,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아무도 사지 않는 새를 팔아보겠다고 낯선 거리에 앉아 칼바람을 맞았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누군가 나를 향해 '할머니'라고 부를 때까지 그곳을 서성일까봐, 그렇게 부서진 영혼으로 울지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상처를 주기도 싫지만 받기는 더 싫다. 내일 떠나도 좋으니 곱게 가고 싶다. 적어도 나를 증오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

이제 무엇도 기대하지 않으니 내게 상처를 남길 거라면 차라리 완전히 떠나라. 어차피 나는 혼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