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y's Life/그녀의 나날

[변했거나, 그대로이거나] 내안의 또 다른 나.

Betty1983 2018. 6. 24. 06:45







흉터 치료차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운이 좋은지 나쁜지)바로 옆에서 연인인듯 한 여자와 통화하는 남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기회가 생겼다.

여자의 소소한 일상사진을 공유하고, 쓰잘머리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짓던 남자는,

경제면 기사의 요점만 보겠다며 잠시간 양해를 구하나 싶더니 그 내용까지 여자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분명 내심 부러워했을 텐데,

약간 기분이 이상하다가, 보기가 좋아 슬몃 웃기도 했다가, 아무 의미도 없는 지하철 천장의 환풍구를 내내 쳐다보았다.

'저기 설치되어 있는 게 에어컨 같은데 정말 크다. 쉬지도 않고 돌아가네. 안 시원할 수가 없겠구나.' 멍하니 생각하다가,

러시아 관련 주를 조금 샀는데 며칠만에 10% 벌었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남자의 음성이 들렸고,

'주식이나 사볼까. 몇 주 안 사도 얼마라도 벌면 기분 좋고, 내가 갖고 싶던 핑크색 샌들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했다.

  

옷, 신발, 가방 같은 것을 것을 좋아는 해도 비싼 것을 구매하지는 않기 때문에,

내가 계획한 범위 내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물건이라 '주식 투자해서 신발 살까.' 같은 황당한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달달한 연인의 통화를 들으면서 에어컨을 구경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주식투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분명 슬퍼야하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인 건데 나는 지나치게 덤덤해서  그런 나를 인지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여름이 되면 저렴해지는 식료품에 기뻐하고,

간만에 폭주하듯 먹어치운 과자와 초콜릿에 만족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단순한 척하는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호박전이 제일 쉽다던데 손 많이 가. 감자볶음은 간이 덜 된 줄 알았더니 먹을만 하고, 계란말이는 망했지만 뿌듯해.'하며,

아픈 허리를 달래며 글을 편집하고, 선곡한 노래의 가사를 한자씩 옮겨 적어 올리며 부단히도 당신이 죽기를 바라는 나는.

더 이상해졌거나, 더 단단해졌거나, 그도 아니면 사람 보는 눈이 제대로 깨어 진즉 봤어야 할것을 지금 보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것처럼,

당신이 외로워서 잠깐 갖고 놀다 버린 내 마음은 죽은 채로 유령처럼 살아남아 기이한 방법으로 매순간 나를 일깨운다. 

돌이키고 싶은 추억, 혹은 절절한 그리움이라면 차라리 좋으련만, 비겁한 당신에게 남은 거라곤 증오와 혐오 밖에 없다.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거짓을 진심으로 포장했는데 그것도 알아채지 못한 나는 상등신이었다. 진짜 눈뜨고 코 베였다.)


정신 차리자. 죽을 수 없다면, 살아야한다면, 눈 똑바로 뜨고 누구에게도 더는 속지 않게. 난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