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만나서 맛있게(과식 수준의)식사를 하고,
식욕이 폭발해서 밤세워 주전부리를 한 뒤, 설거지마저 방치하고, 옅은 두통에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난 나는,
별도 없는 늦은 밤에 빨래를 널고,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닦은 뒤, 멍한 채로 오징어에 땅콩까지 말아 먹었다.
(이건 제정신이 아닌 거다. 식탐이 폭발한 건지, 마음이 허한 건지, 그도 아니면 미친 건지 나도 모를 일이다.)
깨어나서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당연히 몸무게는 늘어있고, 놀랄 것도 없는 나는 또 절식하고 있다.
빨래를 널고 들어왔는데 빨래집개를 어쨌는지 기억 안 나는 게 아니라 내 기억 자체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렇게 먹으면 또 토할 텐데'생각하면서도 좀비처럼 끊임없이 주전부리를 씹고 있을 때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어진다.
(다리 위를 걷다가 다리가 끊긴 곳에서 물속에 빠져 병원에서 눈을 떴는데 그전의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진 기분이랄까.)
그러다 문득 스위츠를 on한 것처럼 나로 돌아와서는,
말끔하게 세수하고, 깔끔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피부를 생각해서 쿨링 마사지까지 하고 있는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지인의 말처럼 나는 지금 마음이 온전치 않은 상태라 종종 퓨즈가 나가거나 당신이 살아있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듯하다.
(부모님의 안부를 챙길 때, 일을 할 때, 지인들을 만날 때, 그런 순간 아주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는 정말 괜찮은가.)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얕은 수(數)가 더 선명하게 읽힐수록,
그렇게나 뻔한 패턴에 놀아나준 내가 용서되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점점 더 혹독한 기준만 덧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속아주는 척하면 정말 모르는 줄 알고 머리 꼭대기에 서려하며, 최고라 추켜주면 오만해지는 인간이 신물나는 걸 어쩌나.
그래도 나를 망가트리는 일은 그만해야 할텐데 멈추는 법을 모르겠다. 극단 말고 중간, 정말이지 나는 그곳에 서고 싶다.
당신에게 속은 나를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면 차라리 내 인생에 없었던 일처럼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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